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저는 미국에 온지 15년 정도가 되어갑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때 정말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면 볼 수 있는 수많은 간판들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알수 없었고, 사실 긴장하며 운전하느라 간판들을 지나치면서도 그것들을 볼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을 통해 IHOP 이라는 식당에 한번 다녀온 뒤로는 제 눈이 뜨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을 하고 가는 곳마다 IHOP 이라는 간판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운전하고 다니는 길 위에도 이미 IHOP식당이 여러개 있었던 것을 알고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는만큼 보인다” 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정말이었습니다. 늘 제 옆에 가까이 있던 것이었지만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IHOP 이라는 식당에 가게 되면서 더 많은 메뉴도 맛보게 되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만큼 보이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는데 우리 눈이 뜨여져야 보여지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처럼 우리의 눈도 뜨여져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볼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다 이루셨고 다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눈이 뜨여져서 어디에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1. Why was the king of Aram unable to capture Elisha?
2. Share about a time when God “opens your eyes” to something that is true about him
3. We can’t see God, so how do we know He is with us?(See Galatians 2:20)
더 깊은 묵상
이번 한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혹시 말씀이 없었는데도, 다시말해 말씀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았는데 잘 살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지금 나의 신앙노선에 적색신호가 깜박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런 말 들어본적 있으시죠?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맞습니다. 살았으나 죽은것입니다. 숨쉬고 밥먹고 일하며 살았지만 산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없어서 목말랐다면, 갈증이 있고 뭔가 부족한 삶이 느껴지셨다면 그래도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 (신 8:3) |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사람,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밥 먹고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그 말씀이 얼마나 생명인지 그 말씀이 얼마나 하나님이신지 계속해서 알아가기 원합니다.
열왕기하 6장 입니다.
1.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
엘리야 엘리사 공부를 하면서 선지자가 얼마나 귀한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고 그 일을 감당해준 선지자에게 고맙습니다. 결국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 맞고 죽음까지 당하게 되지만 끝까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왜요? 우리 때문에요. 이스라엘 사람들. 엉망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로 갈라진후 어느 왕 하나 바른 왕이 없었습니다. 리더가 이 모양이면 백성들은 어땠을까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고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릴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그 수고와 열심이 느껴지기 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관대.. 이토록 집착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는지.. 이제는 조금 압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결코 자녀를 버릴수 없는 것입니다.
| (히 1:1)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
| (히 1:2) |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자식을 위해 죽을수는 있어도 버릴수는 없는 아버지의 지독한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결국 당신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들까지 죽이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가지고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주시고 살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요 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 (요 3:17)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5)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선지자들 또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그럼 끝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궁긍적으로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 (갈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내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니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아질수 있습니다. 선지자 얘기하다가 여기 까지 왔네요.
2. 쇠도끼 사건
오늘 본문은 두가지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첫째는 엘리사 밑에 있던 신학생 한명이 신학교를 넓히는 일을 하다가 쇠도끼가 물에 빠진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천천히 읽다보면 왠지 엘리사는 신학교 넓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불평을 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리고는 자신들이 다 자리도 봐두고 와서는 엘리사한테 같이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증축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불편함으로 넓히기를 원했던 거 같고 거기에 엘리사도 데리고 간 것입니다.
| (왕하 6:1) |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왕하2:3 |
| (왕하 6:2) |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
| (왕하 6:3) |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
| (왕하 6:4) |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
| (왕하 6:5) |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
| (왕하 6:6) |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
| (왕하 6:7) |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
그런데 그렇게 가서 나무를 베다가 쇠도끼가 물에 빠진 것입니다. 물에 빠진 도끼를 어디서 찾는다는 말입니까? 저는 물건을 잃어버릴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죠? 좀 찾아주세요. ” 하고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처럼 신학생들도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물에 빠진 도끼를 어떻게 찾을수 있겠어 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수도 있었겠지만 엘리사의 능력을 알았는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쇠도끼를 찾게 됩니다.
이번주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겼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를 하기 보다 제 힘으로 풀어보려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왠지 영적인 일에만 관여하실것 같고 이런 문제는 나 스스로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쇠도끼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음에도 왠지 기도하기가 꺼려졌습니다. 내가 해결하면 일의 진행을 쉽게 볼수 있는데( 결과야 어떻든)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다려야 하고 지켜봐야 하고 그러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래서 쇠도끼 말씀이 생각이 났는데도 기도하지 않은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거 다 알지만, 하나님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 알지만 기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러지 않을까요?
선지생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 하다가 지금 봉변을 당한 거라서 하나님께 기도하기가 미안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도 별로 원하지 않은 것을 하다가 일이 생긴것이라면 더더욱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수 있었겠지만 여기서 선지생도는 “아아 주여.. “하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혹 내가 결정을 잘못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부르면 도와주시는데 우리의 체면이 우리의 기도를 막을때도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 하면서요. 우리 하나님은 참 크신 분이신데 이런 우리의 일상에서도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3. 아람 군대의 공격
둘째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려고 작전을 세워 공격하면 꼭 이스라엘이 먼저 그것을 알고 아람이 공격하고자 하는 그 곳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방비한 것입니다. 처음에 아람왕은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아람에 있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미리 그것을 다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보고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 같은 사람 옆에 있으면 좋겠지요? 그런 분이 지금 늘 24시간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보여야지요.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생각할수 있지요. 하나님은 말안듣는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아람으로부터 오는 공격을 피할수 있도록 한두번 도와주신게 아닙니다. 알랑가 몰라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람이 엘리사를 죽이려고 엘리사가 있는 도단이라는 곳으로 공격을 합니다. 왕이 말과 병거와 군사를 밤에 도단에 보냅니다. 선지생도 하나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OMG! 큰일이 난것입니다. 온 성읍을 에워쌌습니다. 그러니 또 엘리사에게 말합니다. 아아 내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선지생도의 비명이 들립니까?
| (왕하 6:14) |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
| (왕하 6:15) |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
그런데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지요?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있어서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스승 한명 있으면 딱 좋겠지요. 이미 우리는 더 큰 스승이 있으신데.. 🙂
그런데 이번에는 엘리사가 나무를 던지거나 무슨 일을 하는게 아닙니다. 엘리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후 기도를 합니다.
| (왕하 6:16) |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롬8:31 |
| (왕하 6:17) |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
재밌지 않습니까? 아까는 나무를 물에 던져서 도끼를 찾아줬는데 이번 사건은 기도를 해서 그 사람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 달라고 합니다. 제가 엘리사는 아니지만 리더의 자리에 있다보니 선지생도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교사이기에 학생들이 선지생도 같을 때가 있겠지요. 동시에 우리는 선지생도와 같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입장이 되어 보기 위해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반응은 둘다 기도하며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애는 나무를 던지고 두번재는 기도하며 눈을 열어보게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민해보세요.
4. 눈이 뜨여졌습니까?
이미 하나님은 엘리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냥 말과 병거가 아닌 불말과 불병거를 산에 가득 둘러서게 하셨습니다. 우와! 대단한 우리 하나님.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고백처럼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다윗도 그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엘리사도 그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유있게 선지생도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도 눈을 열어 보게해달라고요
우리가 때로 문제를 들고 와서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눈을 열어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함을 느낍니다. 특히 자녀들이나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놓고요. 그런데.. 그런 기도를 드리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왜요? 내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바리새인들을 혼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 (요 9:39)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
| (요 9:40) |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롬2:19 |
| (요 9:41)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보지 못하면 보지 못한다고 장님처럼 와서 보게 해달라고 하면 되는데 보지도 못하면서 본다고 하는게 문제입니다. 자신이 아픈지 알면 의사를 찾아갈수 있는데 자신이 아픈지를 모르면 의사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 (마 9:12)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말씀을 준비하면서 혹시 우리가 본다고, 안다고 착각하는 바리새인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자녀들 앞에서 큰 소리로 가르치고 있는건 아닌지..
엘리사처럼 우리도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난 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들에게 왜 믿음이 그 모양이냐 라고 말하지 말고 저들도 보게 하소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본 자는 그렇게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못보는 자들을 향해 무시하고 정죄한다면 사실 우리도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믿음을 설명할때 보는 것이랑 관련하여 이야기 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보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을 보고 물이라고 말하는것은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히 11: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 (히 11:2)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 (히 11:3)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우리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은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은 공기, 바람, 사랑. 미움. 양심.이런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고후 4:18)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마 6:22) |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5)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
| (마 6:23) |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
마음의 눈은 몸의 등불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건강한지가 중요합니다. 마음의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음의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습니다. 몸은 같은데 그 마음의 눈에 따라 성한 몸이 되거나 나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 (엡 1:18) |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 (엡 1:19) |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여러분은 눈이 열려졌습니까? 열려지고 싶은데 어떻게 열어집니까? 어떻게 보이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신실하심과 사랑을 신뢰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수 있을까요? 어제도 교사모임에서 한 교사가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burn out되지 않고 주의 일을 감당하고 있더랍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즐겁게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는데 그게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고민하게 되었답니다. 어떻게 그 눈이 뜨여졌을까요?
| (눅 24:13) |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
| (눅 24:14) |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
| (눅 24:15) |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
| (눅 24:16) |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 (눅 24:1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처럼 눈이 가리어져 예수와 함께 걸으면서도 그와 이야기 하면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예수와 이야기 하면서 슬픈 빛을 띠고 갑니다. 지금 예수는 부활해서 그들과 함께 있는데. 우리의 인생이 꼭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같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가리어진 눈이 뜨여집니까?
| (눅 24:25) |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
| (눅 24:26)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
| (눅 24:27)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 (눅 24:28) |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
| (눅 24:29) |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
| (눅 24:30) |
그들과 함께 2)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
| (눅 24:31) |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떡을 떼어주실때 입니다. 말씀의 떡을 먹고 난 후 그들은 눈이 밝아집니다. 믿음은 종이 한장 차이 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상황은 같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이 전혀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것 같은 지옥에서 살고 계십니까? 마음의 눈이 열려지면 지옥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을대, 우리의 인생에 어려움이 닥칠때.. 이미 승리하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죽음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슬픈 기색으로 투벅투벅 걸어가는 엠마오의 제자가 우리의 모습은 아닐련지요. 선지생도처럼 두려워하고 있는건 아닌지요?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불병거와 불말을 보려면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리고 그 말씀이 믿어질때 보이는 것입니다. 찬송가가 생각납니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저는 우리가 말씀앞에 나올때마다 우리의 눈이 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래 교회 다녔다고해서 교사를 한다고 해서 눈이 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신학생도 눈이 안 열려져서 두려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 (시 119:18) |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
바리새인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보이는 척 하는 거 말고 진짜 하나님의 불병거와 불말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지독한 사랑에 눈이 뜨여지기 원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눈은 뜨여지고 아는 만큼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