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속에서 정보가 없어서, 무엇을 몰라서 하나님 말씀을 못 지키는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않는 우리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부흥회나 컨퍼런스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유트브를 열면 수많은 강의와 설교가 있는데 굳이 뭐하러 가서 듣나 하고 생각할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배움에 자리, 예배의 자리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말씀을 듣고 변하고 싶다는 표현인것 같습니다. 정말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다시한번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공지사항
1. 유년부 예배는 10시 50분에 시작합니다.
2. 오후학교는 1:15분에 시작합니다. Pick up & Drop off는 유년부 예배실에서 합니다.
1:15~1:40 (중등부실): 어린이 콰이어 / 1:45-2:25(문화센터)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2:25 -2:30(유년부실): 간식
3. 토요일 1시, 3학년 이상 남자 아이들을 위한 농구모임이 있습니다.
4. 이번주 기도와 헌금 안내 : 기도순서를 맡은 아이는 미리 준비할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9/22 기도 헌금
저학년 한주원 Kayla
고학년 김찬영 김주나
Family Discussion Starter
What was the significance of Elisha parting the water?
Describe someone whose faith has encouraged you?
Can we obey God by our own power? Why or why not?
더 깊은 묵상
1. 사명을 시작하는 엘리사
| (왕하 2:1) |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
엘리야는 자신이 떠나할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도 자신이 갈 것을 알고 여호수아를 세우게 되었지요. 엘리야도 자신이 가고 난 그 다음 자리에 엘리사가 설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말씀해주셨으니까요. 그래서 일까요? 엘리야는 마지막을 엘리사와 함께 합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엘리야는 자꾸 엘리사에게 여기 머무르라고 하는데 엘리사는 굳이 엘리야를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소신껏 나아가야 하는지.. 엘리야가 엘리사를 시험했는지는 모르지만 엘리사는 자신의 소신껏(하나님의 주신 사명)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때론 우리가 가는 일을 말릴때가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했을때 주변에서 죽을수도 있다고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요.
| 행 20:22) |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
| (행 20:23) |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
| (행 20:24)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길을 간다고 했을때 제자들은 절대 그렇게 할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런것 같습니다. 때론 주변에서 우리를 말릴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런건 아니겠지요. 주변의 말을 들어야 할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따라야 할 때도 있는것 같습니다.
2. 다른 생도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것을 다른 생도들, 즉 신학생들도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엘리야를 가까이서 따랐던 사람은 엘리사 였습니다. 생도들의 대답이 꼭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 (왕하 2:3) |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
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알지만 우리도 액션을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때론 남의 집 불구경 하는 것처럼 대할때가 있습니다. 내가 그곳에 직접 들어가서 하나님을 체험하기 보다는 멀리서 불구경 보듯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엘리사와 같은 경험은 기대할수 없을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이 있지요.
| (마 11:12) |
1)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 (눅 19:22) |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
| (눅 19:23) |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
| (눅 19:24) |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1)므나를 빼앗아 열 1)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
| (눅 19:25) |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1)므나가 있나이다 |
| (눅 19:26) |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역사하시지만 아무에게나 역사하시지는 않습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까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3.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 (왕하 2:9) |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
언뜻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가 하는 기적을 두배나 더 얻고 싶어 한것처럼 보이나 여기서 쓰이는 double portion이라는 말은 신명기에 나오는 장자의 상속권을 받을때 쓰는 용어 입니다.
| (신 21:17) |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
그러니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원한 것은 단순히 능력을 2배나 주소서가 아니라 엘리야의 선지자의 일을 자신이 물려 받기를 원한 것입니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라는 찬양처럼 엘리사는 엘리야의 그 기업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이 감당하기 원했습니다.
4. 사람은 할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 (왕하 2:10) |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
엘리야가 말합니다. 니가 내게 어려운 것을 구한다고요. 그러나 니가 내가 가는 것을 보면 그 성령의 갑절이 너에게 임할거라고 이야기하지요. 예수님과 성령님이 관계가 생각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것을 슬퍼하니까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다고요. 그래서 내가 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요.. 또한 제자들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냐고 묻자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마 19:24) |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
| (마 19:25) |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
| (마 19:26) |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 이 모든 일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습니까?
5. 본대로 한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쫒아 다니면서 엘리야가 행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야가 떠나고 나자 엘리사는 그가 본대로 합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할수록 기도제목이 단순해집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그런데 그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때론 사람들에게 믿음을 이야기하면 그건 너무 어려워서 못한답니다. 맞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못합니다. 엘리사도 그것을 알았기에 엘리야에게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옷을 취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의지해서 살아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쫒아가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예수님 닮은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그들이 본대로 따라합니다. 특별히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자국. 내가 만들어놓은 발자국을 우리 아이들이 밟고 따라오겠지요. 가까이 예수를 쫒다보면 우리도 어느새 예수 닮은 자가 될 것입니다.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다 아시지요?
어제 오늘 패밀리 컨퍼런스를 참여하면서 또 깨닫습니다. 우리는 매일 배워야 합니다. 사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없지만 자꾸 까먹는게 문제입니다.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뒷통수를 맞은 듯 합니다. “Never too late to learn”
자식을 잘 키우는 것. 우리 부모의 소원일텐데.. 내가 예수님 닮아가면 자녀들도 그 길을 따라 올 거라 믿습니다. 아무리 배워도 우리는 배운 대로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닮아가려고 스트러글 하면 그 모습을 아이들은 배울 것입니다.
너무 심플합니다. 잘 삽시다. 그것은 나를 살리는 길이고 가족을 살리는 길이고 교회를 살리는 길이고 나라는 살리를 일입니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 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 (신 6:4)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 (신 6:5)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 (신 6:6) |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
| (신 6:7) |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 (신 6:8) |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
| (신 6:9) |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