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f 7/21

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오늘은 노래 한곡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모세의 어머니였던 요게벳의 노래입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가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할때 믿음으로 작은 갈대 상자안에 자신의 아이를 흘러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해보셨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우리의 자녀를 그렇게 참 부모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구원의 하나님이 능력과 사랑으로 끝까지 우리 자녀들을 책임져주실것입니다.

작은 갈대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정처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흘러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정처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흘러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를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그가 널 사용하시리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공지사항
1. 아이들 예배는 10:50에 시작합니다! 늦지 않게 아이들을 보내주세요.
2. 토요일 1시부터 3시까지 농구모임이 있습니다.
Family discussion starters
Read Psalms 51 together. What parts of David’s prayer stand out to you?
Do you ever try to hide your sin? Why?
How do you feel knowing that Jesus died for your sin- past. Present, and future?
더 깊은 묵상
오늘 말씀앞에 나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년부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말씀을 준비할수 있었을까요? 지난 주 목사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 유년부 아이들에게도 빚진자가 되었네요. 🙂
오늘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말씀을 주실까요?
지난 주 사무엘하 9장은 므비보셋의 스토리를 통해 자격없는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절둑발이처럼 아무것도 왕을 위해 할수 없는 우리를 찾아와주시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가족이 되어 하나님의 식탁에서 함께 앉을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리고 사무엘 하 10장은 암몬과 전쟁이 시작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전쟁이 일어납니까? 읽어보세요. 다윗은 망명 시절 암몬의 왕 나하스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하스 왕이 죽은 것을 알고 다윗은 자신의 신하들을 보내 조문하게 합니다. 그런데 나하스왕의 아들인 하눈은 다윗의 선의를 오해하고 맙니다. 특히 하눈 왕 옆에 있던 관리들의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 하눈왕은 다윗의 선의를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눈 왕은 다윗이 보낸 조문객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행합니다 정말 드라마같은 이야기입니다. 읽어보세요. 어떻게 수치스럽게 하였는지요. 그 사건으로 인해 암몬과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암몬은 누구입니까? 암몬의 시조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두딸 중 하나이고 다른 한명은 모압의 시조가 된 것입니다.
(창 19:36) 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창 19: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창 19: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이니까 그들은 원래 친척관계였고 형제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적대관계에 있게 된 것입니다. 지도를 보십시요. 요단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이스라엘이고 동쪽은 거의 다른 나라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에돔, 모압, 암몬, 아람의 나라가 있습니다.
치열한 전쟁중에
오늘의 본문의 시작을 보면 10장에 이어 아직도 전쟁중입니다. 그런데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때가 되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삼하 11:1) 그 해가 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고대 전쟁은 365일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할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전쟁이 어려워지면 합의하에 서로 쉬었다가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전쟁을 시작하는 거시지요. 영어로 보면 “ in the spring ’이라고 나오지요? 겨울은 우기여서 전쟁을 못하고 건기인 봄이 되면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암몬과 전쟁 모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0장에서는 열렬히 싸우던 다윗이 11장에서는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 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왜 전쟁에 나가지 않았을까요? 여려가지를 생각해볼수 있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스라엘이 안정권에 들고 군대도 정비가 되었으니 굳이 왕이 나가서 싸우지 않아도 요압장군과 정예부대들이 충분이 암몬과 싸울수 있게 되었던것 같습니다. 아니면, 다윗이 이제는 싸움에 지친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다윗의 나태함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다윗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혹 몸이 전쟁중에 있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군대들을 보내놓고 리더로서 마음조차 그고세 가 있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곳에 선교를 보내놓고 우리는 여기서 룰루랄라 하고 기도를 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삼하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장군들과 군인들은 치열한 전쟁 중에 있을때 다윗은 무엇을 했습니까? 낮잠을 자고 저녁때가 되어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게 됩니다. 그냥 보여지는 그림이 할일 없는 사람과 같이 보여집니다. 그렇게 거닐때에 하필 그곳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게 되는데, 그 여인이 심히 아름다워보인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저녁때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저녁때이기도 하지만 다윗의 영적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늘 주님께 묻고 주님과 동행했던 우리의 다윗에게도 영적인 암흑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영적 암흑기는 사울에게 쫒기며 전쟁을 하던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안정되고 이만하면 좋다 하며 왕궁 옥상을 거닐때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시간 남고 돈 남으면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엄청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할까요? 저 자신을 보면 아닙니다. 늘 바쁘게 살아서 시간이 좀 있으면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집안 청소도 하고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시간이 주어지면 침대에 누워 핸드폰 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 것들이란 쓰잘데기 없는 정보들입니다. 안 그러신분들도 계신가요? 돈 있고 시간 남으면 뭔가 좋은 일을 할것 같지만 인간은 그런 선한 존재가 아닌것 같습니다. 다윗도 이 옥상에서 무너집니다.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본 것 자체를 가지고 뭐라고 할수는 없겠지요. 떠진 눈으로 보게 된 것일테니까요. 그러면 거기서 멈춰야 하는데, 우리는 보는 것에 약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견물생심이란 한자어가 있지요. 실제로 보게 되면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안목의 정욕이라고 말하지요.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다윗은 거기에 넘어집니다. 진짜 밧세바가 아름다웠는지 아니면 뭐에 씌어서 아름다워보였는지 다윗을 멈출수 없게 하였습니다. 죄는 그런 것입니다. 지금부터 죄가 얼마나 집요하고 무서운지 한번 보겠습니다. 슬적 보게 된 그것으로 인해 다윗은 무너집니다.
보내다
(삼하 11: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오늘 본문 사무엘하를 읽다보면 계속해서 나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보낸다” 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보내서 무슨 일을 시킬수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권력을 가진 자가 하는 행동입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많은 사람을 보냅니다. 왜요? 죄를 짓고 나중에는 그 죄를 덮으려고 그렇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죄를 짓고 또 그 권력으로 죄를 커버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봤더니..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눈치를 챈 그 신하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니되옵니다” 입니다. 그러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정욕이라는 죄는 한번 걸리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삼하 11:4)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또 사람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 데려옵니다. 그리고 결국 밧세바와 동침합니다. 보고 아름답다고 한 그 발상이 결국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한번에 끝났다면 다윗의 죄가 숨겨졌을테지만 이것을 다 지켜보고 계시던 하나님은 죄를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니다. 그녀의 임신은 다윗의 범죄 행위를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삼하 11: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아름답다. 갖고 싶다’ 했던 그 욕심이 간음이라는 죄를 낳고 그 죄는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를 낳고 결국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죽는 것을 통해 죄의 값은 사망인 것을 알려주게 됩니다. ‘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또다른 죄를 부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몰래 죄짓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임신을 통해 법죄가 드러나게 되자 다윗은 머리를 씁니다. 완전범죄를 하려고요. 죄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죄는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또 다른 죄를 만들어냅니다.
(삼하 11: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우리아다윗에게로 보내니
(삼하 11:7) 우리아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삼하 11: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우리아는 헷사람이었습니다. 즉 가나안 사람이었는데 유대인으로 개종한 경건하고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쟁 중에 있던 우리야를 불러내서 착한 척을 하며 군사의 안부를 묻습니다. 가식이지요. 그리고 우리야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 주는 척 하면서 밧세바와 잠을 자게 하려고합니다. 발을 씻으라는 뜻이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충성심이 좋은 우리아는 왕의 말대로 하지 않고 부하들과 밖에서 잠을 잡니다. 왜요? 그가 대답합니다.
(삼하 11:11) 우리아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우리야의 대답은 바로 다윗의 나태하고 의리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하들은 바깥들에서 전쟁중인데 어떻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같이 자리이까? 왕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할수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야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빛이시다”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우리야는 다윗의 어두움 마음을 비춰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번 지은 죄가 또다른 죄를 불러냅니다. 한번 더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라고 부추기지만 우리야는 자신의 말처럼 집으로가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잠을 잡니다. 이제 다윗의 계획은 실패입니다. 임신 사실을 교묘히 우리야의 자식으로 숨기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 다윗은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플랜이 실패하면 지금 하나님앞에 나와야 하는데 자신의 권력으로 이 일을 해결해보려고합니다.
(삼하 11: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삼하 11: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여호와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우리의 다윗이 이렇게 무너집니다. 결국 우리야를 죽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과부가 된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와서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행한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습니다. 글쎄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한 일을 보고 누가 감히 악하다고 할수 있었을까요? 그야 말로 왕인데.. 다윗 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보시기에는 악한 일이었습니다. 때론 우리도 우리의 권력을 남용하면서 남들도 다 하는데 하면서 죄를 합리화 하려고 할때는 없습니까? 여호와 보시기에는 어떠할까요? 죄는 옆사람이 정의해주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옆 사람이 칭찬을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일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삼하 11: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다윗은 죄를 짓고 그 죄를 커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을 보내십니다.
(삼하 12:1)여호와께서 나단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바로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로 보내십니다. 여지껏 하나님은 다윗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나단을 통해 말씀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죄를 짓는 과정중에도 여러번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다윗은 눈과 귀가 어두워졌습니다. 이제는 직접 말씀을 주십니다. 범죄한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눈과 귀가 멀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한 이야기로 말씀해주십니다.
(삼하 12:1) 여호와께서 나단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삼하 12: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삼하 12: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삼하 12: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자신의 것은 잘 안 보이고 안 들려도 제 삼자의 자리에 서면 어찌나 잘 보고 잘 들리는지 옳고 그름이 바로 판결이 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셨습니다. 얼마나 적절한 이야기입니까?
(삼하 12: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다윗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인것을 선포합니다. 맞습니다. 다윗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우리는 마땅히 죽을 자들입니다.
당신이 그 사람


(삼하 12: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삼하 12: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삼하 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혹시 우리 중에도 이 이야기를 듣고 다윗 정말 너무 한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하면서 흥분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 너무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 생각나는 경험이 있습니다. 한참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로 뉴스가 뜨거웠던 때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행동을 할수 있을까? 저도 흥분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 사람의 신상이 인터넷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생겼고 뭐하는 사람이고 몇살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런 궁금점을 갖고 운전을 하고 가는데 빨리 집에가서 인터넷을 찾아봐야지 하는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렇게 궁금해? 거울봐봐. 꼭 너 같이 생겼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백미러로 제 얼굴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 뉴스에 나온 그 사람은 정말 죄인 같고 나는 의인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절대 그런 일은 저지를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고 얼마나 못나고 못됐으면 그 사람은 그런 짓을 저질렀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죄를 지을수 있는 죄인이라고. 그런 상황, 그런 처지에 놓이면 나도 얼마든지 그런 죄를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인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윗 이야기 뿐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사람의 연약함과 넘어짐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자신은 엄청 의인인 것 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얼만든지 그 자리에 설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다윗의 회개
사무엘하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것이 시편 51편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4:1, 시109:26
(시 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롬3:4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1)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사38:17, 사43:25, 미7:9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시110:3, 고후3:17
(시 51: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삼하12:9
(시 51: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시 51: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69:35, 사51:3
(시 51: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한번 지은 죄는 주홍글씨처럼 늘 나를 따라다니며 힘들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범죄하여 무너진 사울의 삶을 가까이서 본 사람이었기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 인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에게 선을 행할 의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인것을 알고 자신이 통회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시고 멸시치 않으신 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아니 다윗이 밧세바에게도 악을 행하고 우리야에게도 악을 행했는데 왜 다윗은 주께만 범죄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은 것, 자신의 힘으로 사람을 보내어 죄를 짓는 일들, 자신의 힘으로 우리아까지 없애고 완전범죄를 지을수 있다고 한 그 생각의 저변에는 자신이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 자신의 삶을 제멋대로 하려는 마음, 다른 사람의 삶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물론 우리야와 밧세바에게도 잘못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마음은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기억해야 할 것은 이미 물은 엎지러젔다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순간 상황은 더 악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통회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7번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쪽팔려서 못간다고 하면 정말 소망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Bad- worse- worst 중에 무엇이 최고로 좋습니다. Bad 입니다. 죄를 짓고 나쁜 상황이 올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면목이 없어도 나아가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통회하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이 어떤 거냐면, 나의 과거 잘못의 동영상이 온 컴퓨터에 떠돌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나서 나의 지난 날 과거의 모든 죄악된 동영상을 한군데도 남지 않게 다 제거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죄없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의 결과
그러나 죄의 용서는 받았지만 죄의 결과는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consequence 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죄를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았지만 죄가 뿌린 씨앗에 열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으로 사무엘하의 이야기는 다시금 다윗을 어렵게 합니다. 오래 신앙생할을 하고 있는 분들중에 삶이 늘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적인 면을 떠나서 마음의 평안이 없으신 분들이 있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배드리고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죄 지은 것으로 인해 용서는 받았지만 죄의 씨로 인해 생긴 상처로 인해 관계가 어렵고 평안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반드시 뿌린 씨앗은 열매를 거두게 되어있습니다.
(삼하 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삼하 12: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삼하 12: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삼하 12:13) 다윗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삼하 12: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삼하 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결론
다윗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위해 죄를 짓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람을 보내셨지만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우리죄를 드러내시고 덮어주시고 용서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조입니까?
다윗이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주의 일을 감당하면서 얼마든지 어둠에 빠질수 있는 존재인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주님안에 거할때만이 우리는 빛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설교라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다 거기서 거기. 죄인입니다. 사울도 그랬고 다윗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3장에 가보면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삼하 3: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삼하 3: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삼하 3:8) 아브넬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삼하 3: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은 죄를 짓는 것 자체를 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할수 있는게 죄 밖에 없습니다. 죄공장에서는 죄 밖에 생산이 불가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누군가랑 비교하며 나는 더 깨끗해. 쟤보다 낫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 계시다면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가인도 아브넬도 자신이 죄인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하게 여겼습니다. 거기에는 진짜 소망이 없습니다.
(요일 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817)219-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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