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된 부모님들과 우리 자녀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안에 형제의식 가족의식이 더 생기길 원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내 부모요, 내 형제요, 내 자녀로서 사랑하고 섬긴다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유년부의 선생님들 중 아이들을 부를때, “아들” 하고 다정하게 부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을때마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유년부의 아이들은 누군가의 자녀도 되지만 나의 자녀도 된다는 것을요.
| (요 17:21)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 (요 17:22)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공지사항
1. 예배시간을 잘 지켜주세요. 유년부 예배는 10시 50분에 시작합니다.
2. 토요일 1시부터 3시까지 3학년 이상 남자 아이들을 위한 농구 모임이 있습니다.
Family Discussion
How do you think Mephibosheth felt in today’s Bible story?
Share about a Tim you regret not being kind to someone?
Honor a family member you have seen showing kindness?
더 깊은 묵상
몇년 전 사사기를 공부할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때 우리가 너무 많이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서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누려고 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는 착한 사람 나쁜 사람구분할수 있었는데 사사기를 읽을 동안은 너무나 헷갈렸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사사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을 읽는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어서 사사라 할지라도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깨달은것이 성경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 아무리 그들이 훌륭한 인물로 비춰지더라도 그들이 한 모든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것. 그때 그런 깨달음을 가졌을때 성경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므비보셋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성경을 읽을때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 우리 자신을 넣어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도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 자신을 다윗과 비교하지 사울과 비교하지는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사울일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울인 것을 생각하기보다 다윗의 입장만 되어서 다윗처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과 므비보셋을 읽으면서도 다윗의 입장에서만 서서 우리도 은혜를 갚는 사람이 되야지. 내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친절을 베풀어야지 라고만 생각한다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모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친절을 베풀라는 의미에서 이 본문이 주어진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 어떤 렌즈를 끼고 읽고 있습니까? 계속 성경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을 가르는 도덕적인 안경을 끼고 읽으신다면 바꾸셔야 합니다. 성경은 복음의 렌즈로 보아야 합니다. 영웅을 찾아서 그 영웅 처럼 되야지가 아니라 나는 그 영웅이 필요할수 밖에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고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무엘하 9장입니다. 지난 주까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왕이 된 다윗은 법궤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했지만 하나님께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큰 축복을 받게 되는데 그 축복은 구약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안을 통해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를 세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울은 잘못했다고 왕에서 거절 되었지만 다윗의 가문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잘못을 해도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고쳐서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보장입니까? 그 약속의 말씀이 결국 예수님을 오게 하셨고 몇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도 그 약속에 들어와 있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가족이며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지금 이 약속안에 거하고 살게 된 것입니다. In Christ!! We are in Christ!!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되었는지 그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왕의 부르심
| (삼하 9:1) |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
다윗은 이제 어느정도 나라가 안정기에 들었을때 잊지 않고 사울의 집에 남은 자를 찾습니다. 아무리 다윗이 안정기에 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사울의 세력이 남아있었을때에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힘을 실어주는 일은 위험한 일일수 있습니다. 성경을 쉽게 읽으면 그냥 왕이니까 그랬나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왕의 자리에 있다면 그 전에 왕이었던 집안의 사람을 찾아서 은총을 베푸는 일이 작은일이 아닐것입니다. 잘못하여 사울의 집안의 누군가가 쿠테타를 일으키면 다윗은 왕권을 빼앗길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마 다윗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쩌면 왕이 되고 좀 시간이 흐른후에 이 일을 진행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다윗은 결심하고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바뀌면 이전정권을 잡은 사람은 다 없애야 마땅합니다. 조선의 역사만 봐도 정권 교체시에는 피바람이 불지 않습니까? 몇천년 다윗시대에도 그러했겠지요. 다윗의 이 액션은 모든 사람에게 정말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다윗이 착해서? 다윗이 정이 있어서.? ㅎㅎ 바로 요나단과의 언약때문입니다. 요나단이 누구입니까? 제 2의 왕이 될 인물이었는데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다윗을 보호해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자신이 막을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떤 언약을 했을까요?
| (삼상 20:14) |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
| (삼상 20:15) |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삼하9:1, 삼하21:7 |
| (삼상 20:16) |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는 날 동아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하고 우리 집안이 다 끊어진 뒤에도 너의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버리지 말게 하라” 라는 것입니다.
그 언약을 다윗은 기억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은총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지요?
‘헤세드(חסד)’의 히브리어는 ‘성막의 울타리’를 의미하는 ‘헤트(ח)’와 ‘하나님의 호위(보호)’를 의미하는 ‘싸메크(ס)’ ‘문’을 의미하는 ‘달렛(ד)’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하나님께서 둘러 진을 치고 보호하시는 울타리와 구원(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헤세드’는 ‘은혜(긍휼, 자비, 인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헤세드(은혜)’는 에메트(진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진리의 본질을 담고 있다. ‘헤세드’는 ‘하싸드’라는 ‘사랑하다’, ‘연모하다’ ‘자비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하나님의)열심’, ‘친절’, ‘은혜’, ‘인자’, ‘자비’, ‘은총’, ‘시기’, ‘질투’, ‘긍휼’ 등을 의미한다. ‘헤세드’는 일반적인 ‘은혜’, ‘자비’, ‘긍휼’의 의미도 있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은혜’, ‘자비’, ‘긍휼’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자기 백성을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어집니다.
왜 헤세드입니까? 므비보셋은 자신이 무엇을 잘해서 다윗에게 은총을 얻은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므비보셋은 다윗을 대적하던 사울 집안의 사람이므로 은총이 아니라 보복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쥐죽은듯 조용히 살았어야 했을겁니다.
므비보셋의 인생을 한번 봅시다. 요나단의 아들로 태어난 므비보셋은 성경에서 절둑발이로 나옵니다. 어떻게 하다 절둑발이가 되었나요?
| (삼하 4:4) |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모두 죽게되던 그 날.. 그 소식을 듣고 사울의 가문들은 다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때 유모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하다 아이가 떨어져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다섯살이면 상당히 큰 아이인데 도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는지 다리를 못쓰게 되었을까요? 성경은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아마도 험난한 길을 가다가 큰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므비보셋은 참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입니다. 왕의 집안에서 태어나 호강을 누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세가 불쌍하게 되었고 거기다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 20여년을 지내고 있다가 다윗왕의 호출을 받게 된 것입니다.
| (삼하 9:4) |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
지금 므비보셋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로드발은 요단 동편에 있는 땅인데 그 이름의 뜻은 목장이 없다 입니다. 다시 말해 목초지가 없는 황무지인 곳입니다. 그곳에서 므비보셋은 살았습니다. 다윗왕이 부르기 전까지요. 그 지명의 말처럼 므비보셋의 인생이 바로 황무지 같지 않았을까요? 아무 소망도 없이 절둑발이가 되어 숨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소망없는 인생이었습니다.
2. 시바와 마길
아무 소망이 없이 절둑발이로 살던 어느날 다윗왕이 므비보셋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몇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시바와 마길이라는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은 우리가 시바는 잘 알고 있지만 마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시바는 사울 집안의 종으로 있던 사람이고 마길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므비보셋을 돌보아 주는 것을 봐서는 사울집안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삼하 9:10) |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
시바는 종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이 20명이나 있었고 아들이 15명이나 되는 걸 보니 첩도 있고 꾀나 넉넉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바가 므비보셋을 돌본것이 아니라 구석에 조용히 살고 있던 마길이 므비보셋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시바는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을때도 절둑발이 므비보셋만 이야기 합니다. 다른 사울의 가문이 남아있었지만 그는 다윗에게 좋게 보이려고 했는지 아무 힘도 능력도 없을 것같은 절둑발이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도망나올때 시바는 이때다 싶어서 므비보셋을 악하게 이야기합니다. 굉장히 정치적인 사람이지요.
| (삼하 16:1) |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
| (삼하 16:2) |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
| (삼하 16:3) |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
| (삼하 16:4) |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
반면에 마길은 늘 행동이 같습니다. 그도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나왔을때 다윗에게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러나 시바와 같은 악한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 (삼하 17:28) |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
| (삼하 17:29) |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
같은 행동이지만 전혀 다른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의 마음을 말입니다. 내가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딴 마음을 품을수 있는 사람이란걸 알아야 합니다. 마길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늘 같은 모습으로 약자를 품는 그런 사람이었던것 같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시바와 같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어떤 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분명 하늘의 상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마음에도 위로해주시고 갚아주시길 기도합니다.
3. 두려움
| (삼하 9:6) |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
| (삼하 9:7) |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
| (삼하 9:8) |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
므비보셋이 왕의 부름을 받고 왕앞에 섭니다. 마음이 어땠을까요? 두려웠겠지요. 여지껏 사람들에게로 부터 경험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사울의 손자로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 마땅한 처사였을테니까요. 왕 앞에 므비보셋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것을 안 다윗도 무서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반드시 요나단을 통하여 은총을 베풀겠다며 므비보셋을 안심시킵니다. 제가 므비보셋이었더라도 다윗의 그 선의를 온전히 신뢰하기란 어려웠을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의 사랑안에 들어갈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를 지으면 정말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집니다. 기도를 해도 속 마음 깊은 곳에 기도가 나오지않습니다.그냥 형식적입니다. 하나님이 못 오게 하는 것이 아닌데 죄를 진 내가 두려워서 못가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두려움을 통해 일합니다. ‘네가 죄인인데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 하나님이 들어주시겠니? 니가 그렇게 죄를 짓고 무슨 교사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 죄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감당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고 면목이 없어서 하나님께 못 나가는 것은 겸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것이요, 교만 한 것입니다.
| (히 4:15)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 (히 4:16)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우리 모두 경험이 있으시지요? 이제는 아무리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일지라도 주님앞에 나가야 합니다. 내가 죄책감에 못이겨서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더 늪에 빠지는 것입니다.
| (요일 4:18)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 (요일 4:19) |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말씀을 신뢰하십시요. 온전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내어쫒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르 사랑하셨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좀 착한 거 같이 살아가니까 사랑하시는게 아니라 죄인되었을때 , 가장 망가졌을때에 이미 우리를 사랑하신 것임을 잊지마십시요.
| (롬 8:38)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엡6:12 |
| (롬 8:39)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4. 왕의 식탁
므비보셋은 자신을 죽은 개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은 므비보셋 자신이 자기를 보는 평가입니다. 죽은 개는 무엇입니까? 운전하다가 동물이 차에 치여있는 것처럼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개도 비천한 것을 가리킬때 쓰는 말인데 죽은 개라면 자존감이 낮아질때도 낮아진 사람의 표현 아니겠습니까? 그랬던 므비보셋에게 어떤 반전의 삶이 있습니까? 먼저 왕이 이름을 불러줍니다. 므비보셋이여! 절둑발이가 아니라 므비보셋이라고 왕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앞에 나가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을 만나시죠? 그 뿐아니라 사울에게 속한 온 소유물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므비보셋은 항상 왕의 상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와우! 대박사건아닙니까?
| (삼하 9:9) |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
| (삼하 9:10) |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
| (삼하 9:11) |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
므비보셋’이라는 이름은 불명예를 씻어준다, 수치스러움을 벗겨준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자신이 지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가 지어줬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이라는 이름은 그의 인생이 억울함과 불행스러운 것들로 가득했음을 연상시켜주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드리워진 수치와 부끄러움을 씻는 날이 왔습니다. 다윗이 그를 기억하고, 그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복음은 죄의 수치스러운 삶에서부터 진리 안으로 빛으로 광명한 세상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었습니다. 복음이 복된 소식이 되려면 먼저 우리의 처지가 어땠는지를 알아야합니다.
| (엡 2:1)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 (엡 2:2)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1)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 (엡 2:3)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 (엡 2:4)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 (엡 2:5)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 (엡 2:6)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1:3, 엡3:10 |
| (엡 2:7)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
| (엡 2: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 (엡 2:9)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롬3:27, 고전1:29 |
| (엡 2:10)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소리내어 천천히 읽어보십시요. 우리 모두는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사단에게 속하여 사단의 짓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우리를 긍휼이 풍성하신 헷세대의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내시고 우리를 불러내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왕의 가족으로 삼으시고 왕의 식탁에서 식사를 할수 있게 하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긍휼하심때문에요.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받은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도 아니고 날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이 지금 예수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왕의 식탁에 불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식탁에서 왕의 자녀처럼 enjoy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생각해봅니다. 므비보셋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하루 아침에 왕의 식탁에서 왕의 자녀처럼 행동하기는 어려웠을것입니다. 두려움때문에요. 그러나 왕의 성품을 경험하다보면 이제 마음이 열리고 그분을 신뢰하게 되고 자신의 어떠함이 아닌 그분의 어떠함을 신뢰하게 될 날이 왔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단계에 계신가요? 왕의 식탁에서 그분을 즐기며 그분과 함께 대화하며 식사를 하고 계신가요?
5. 우리가 갚을 은혜 ?
어제 교사모임을 하는데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절뚝발이인 므비보셋이 다윗왕에게 고마워서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라고요. 저는 다윗 왕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내가 므비보셋처럼 죽은 개 와 같은 인생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찾아주시고 불러주시고 자녀 삼아 주심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이 된 것은 ..그래 맞다 절둑발이 같은 내가 왕에게 갚을 것이 무엇인가? ㅜ그 당시 왕이 전쟁에 나간다고 해서 므비보셋이 전쟁에 참여 할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왕을 보호하겠습니까? 아니면 왕궁을 청소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할수 없는 절뚝발이 므비보셋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걸을 수 있고 볼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우리 존재가 대단한줄 알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 생각을 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생색내고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고 알리고 싶어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갚기 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저는 아직 경험은 없지만 장애인들의 예배를 경험한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리를 낼수 없지만 더 큰 소리를 내어 찬양하고 눈을 뜰수 없지만 더 잘 집중하는 장애인들의 예배를 보니 비 장애인인 우리의 예배가 너무나 부끄러웠다고요.
므비보셋과 같은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기를 기도합니다.
주안에서
조이전도사 드림
(817)219-4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