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f 6/30

사랑하는 부모님들께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평안하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하신 첫 인사는 “평안하뇨?” 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바로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오고 평안이 깨질때가 많습니다. 걱정과 염려, 두려움이 찾아올때 그때는 바로 주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그런데 감사함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가 아니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두려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평안하십니까? 내가 지금 예수님 안에 거하는 지를 알려면 내 마음이 형편과 상황에 관계없이 평안한지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평안한지 첵업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으로 평안이 깨졌다면 말씀대로 구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샬롬!
Family Discussion Starter
How do you think David felt when he saw Saul in the cave?
Why is it sometimes hard to choose peace and forgiveness over revenge and conflict?
Who can you show mercy to this week?
공지사항
1. 예배 시간에 늦게 오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년부 예배는 10시 50분에 시작합니다. 11시 20-30분에 오시면 거의 반을 놓치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년부는 10시 50분에 시작하고 맨 처음 시작에 그날애 배울 중요한 설교 영상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하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시간에 늦지 않게 아이들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님들도 예배에 늦지 않게 가시는 일입니다. 예배의 첫 시간을 기억하시고 시간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2. 이번 주일은 오후학교가 있습니다. 오후학교는 1시 15분에 시작하오니 아이들을 픽업하신후 다시 드랍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3학년 이상 남자 아이들을 위한 농구 모임이 토요일 1시에서 3시에 문화센터에서 있습니다.
말씀나눔
이번주는 사무엘상 24장 입니다. 사무엘상을 읽다보니 정말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는지 알것 같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말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읽고 시편을 보니 구구절절 다윗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지난 주 수요일 설교때 본문이 109편이었습니다. 자신의 원수를 보며 그를 저주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세상에 정말 어찌나 구체적으로 저주를 하는지 한번 읽어보세요. 깜짝 놀랄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의로운 척 멋지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다 쏟아내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이겠지요. 우리는 때론 사람들에게 자신의 억울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시 109: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번 부흥회때 오신 목사님은 기도를 참 많이 하시나 봅니다. 하나님께 이야기를 자주하니까 사람들한테 이야기할 시간이 없답니다. 우리도 모든 상황가운데 내 마음을 아시고 모든 상황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내므로 사람들에게 말할 시간이 없기를 바랍니다.
1.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합니까?
다윗의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미친 사울왕을 섬기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것 처럼 보이지만 그 일로 인해 한 나라의 왕인 사울에게 추격을 받고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잘못도 안했는데 사울의 시기로 인해 광야로 내몰리게 됩니다.
사울은 충분히 멋진 왕으로 남을수 있었는데, 그의 질투가 그를 망가뜨려버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쫒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쫒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생각과 에너지는 다윗을 추격하는데 다 쓰여집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여러분들은 무엇이 여러분들을 움직이게 합니까? 여러분들의 에너지는 무엇을 위해 쓰여집니까? 우리 모두가 질투라는 감정을 모두다 가져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질투는 나를 나되게 하지 못하고 나의 시선이 늘 그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무엇을 할때도 그 사람을 신경쓰며 합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시라면 너무 좋겠지요. 다위처럼요. 그러나 그것이 사람이 될때에 그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이며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망하는 길로 가지 마시고,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돌리면 그 안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참 평안을 얻으며 하나님이 나를 나되게 하신 최고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 광야로 몰리는 다윗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은 광야로 내몰리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을 받으사 광야로 이끄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광야이지만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이 광야와 같은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가 그랬지요.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함을 받기를 거절하고 광야로 내몰리게 됩니다. 미디안에서의 40년의 광야 생활이 없었다면 모세가 모세가 될수 있었을까요? 야곱도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단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광야는 꼭 필요한 곳임을 알지만 누구나 선뜻 그 광야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광야에서만이 바윗에서 물이 나와 생수를 마시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을 수 있고 불기둥 구름 기둥의 인도함을 받지만 우리는 광야는 들어가기 싫고 광야가 아닌 이곳에서 살면서 광야에서만 누리는 축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광야에서만 누릴수 있는 것들입니다. 광야는 꼭 장소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광야를 지나며 라는 노래 가사처럼, 광야는 고독하고 외롭고 어디도 기댈 곳이 없어지는 내 마음이기도 합니다. 주님만이 도움이시고 주님만이 내친구고 빛이 되시는 그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부족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유년부에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또 누군가 앞에서 말씀을 가르칠수 있기 전에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참 의지하는 예수 나의 상처입은 심령을 불쌍하게 여기사 위로하여 주시네 미쁘신 나의 좋은 친구”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 때도 안보하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즐겨부르던 찬송이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이 되시며 광야와 같은 시간을 견딜 믿음이 없을때도 주님은 미리 예비해 두신 힘을 주시며 그 시간을 견디게 하셨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제가 누군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시려고 그 시간을 허락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을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시간을 통과할때는 죽을것 같았지만 돌아서고 나니 그 시간이 보석과 같고 지금의 이 축복과 비교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누군가가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축복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만 두면 광야에서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을 경험할 것입니다.
3. 늘 하나님께 묻는 다윗
다윗은 사울왕에게 쫒기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전쟁을 합니다. 사무엘상 23장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이 쳐들어왔을때 사울왕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다윗에게 전합니다. 한국에도 또 여러 다른 나라에도 왕들의 이야기를 보면 미친 왕들이 한명씩 있었는데 사울도 그랬습니다. 다윗을 잡기에 혈안이 되어 나라는 돌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사람들을 죽이기 까지 합니다.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의 제사장을 85명이나 죽였습니다. 누가봐도 사울은 미친왕입니다. 그러니 블레셋이 쳐들어왔을때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에게 그 소식을 전합니다. 다윗은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사울왕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가 이 블레셋을 치리이까?” 하나님께서는 “가서 블레셋을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고 하십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지금 도망자의 신세로 조용히 있어도 위험한판에 그일라로 가서 전쟁을 하면 사울과 그 사람들이 다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일라로 가서 하나님말씀대로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그일라 백성의 생명을 구해줍니다.
(삼상 23:10)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삼상 23: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삼상 23: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아니나 다를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듣고 그일라로 내려옵니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이 은혜를 모르고 다윗을 사울에게 넘긴답니다. 그 일로 인해 광야로 들어가게 된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사울은 매일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다윗을 보호하십니다. 사울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애를 써도 다윗을 어떻게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 누구도 다윗을 해칠수 없습니다. 잠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수는 있지만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다윗을 보호해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삼상 23: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사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전쟁에 나갔지만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사울에 손에 넘겨줄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지 결코 나의 뜻을 이루고 모든 적들을 한 방에 날리고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 기도합니까?
4. 절호의 찬스? 하나님의 뜻?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사울이 군대 삼천명을 거느리고 다윗 한 사람을 찾으려고 광야로 들어갑니다. 재밌네요. 사울도 광야에 있네요….흠.. 그러고 보니 우리도 때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기도 하지만 자신의 고집과 교만으로 인해 광야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사울은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자기가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진셈입니다. 사울은 광야에서 가난한 마음이 아니라 더 고약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이 되어버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여러분 고집이 죄라는 사실 아시나요?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길가 양의 우리에 한 굴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양치기들은 날씨가 나빠지면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굴로 데리고 가는데 그러한 동굴은 양우리라고 불렀습니다.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갔다고 나옵니다. 히브리 표현으로는 발을 가리운다라는 표현입니다. 발을 가리운다는 표현은 용변을 본다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밖에서 들어온 사울은 아무것도 볼수 없었지만 동굴에 있던 다윗과 다윗의 사람들은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잘 볼수 있었습니다.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렇게 나를 죽이려고 하는 그 왕이 스스로 다윗의 굴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누가봐도 하나님이 주신 찬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오늘이 그날이다. 하나님이 주신 날이다. 원수를 갚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가봐도 다윗이 잘못한게 없습니다. 이건 다 사울의 잘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사울을 죽여도 할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와중에도 사울을 원수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세운 왕으로 보았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비교하여 자신이 의로운 자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죄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죄의 양이 적고 많음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거룩함앞에 선 것 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 중 요나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 항구에 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납니다. 그것이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라고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일까요? 돈이 없어 힘들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마침 큰 돈을 가진 어떤 사람의 지갑에서 돈을 보았다고 칩시다. 하나님이 그 돈을 훔치라고 그래서 너의 가난에 보태라고 하실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절호의 찬스는 두가지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사단이 죄를 지으라고 놓아준 찬스일수도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찬스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은 안중에 없고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고 해결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찬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거기다 기도까지 했다하면 100프로 그렇게 신뢰합니다. 그런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여론이 지금이 찬스라고 이야기 했지만 사울의 겉옷 자락만 가만히 베면서 자신이 사울을 해치지 않을 것만 증명하고 맙니다.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삼하24:10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그리고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도 마음에 찔려했습니다. 누가봐도 사울은 죽어 마땅하고 다윗은 억울했지만 원수갚는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저 다윗은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삼상 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마7:16
(삼상 24: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삼상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다른 건 참아도 사람은 억울하면 못참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옳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원수갚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 믿음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롬 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ㄱ)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정말 다윗과 같은 영성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이 필요합니다.
(행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행 4: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5:28
(행 4:19) 베드로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신앙을 지키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사람의 뜻과 하나님뜻 사이에서의 우리의 결정과 반응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옳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사람의 말인지 분별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할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5. 하나님의 일하심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베어 밖으로 나와 사울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갑자기 소리를 높여 울면서 다윗의 옳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왕이 될것도 알고 다윗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견고히 서게 될 것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손을 잘 돌보아 달라고 맹세하게 합니다. 도대체 사울이 이렇게 갑자기 변하고 깨닫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조금이따가 또 달라질 것이긴 하지만요..
(삼상 24: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삼상26:17, 롬12:20
(삼상 24: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삼상 24: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삼상26:23
(삼상 24: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24: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삼상23:17, 삼상13:14
(삼상 24: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기전의 일인데요. 하나님이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를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데 사울이 그의 겉 옷자락을 붙잡으매 그 옷이 찢어지게 됩니다. 그때 사무엘에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니시 꼭 그렇게 이루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것을 들은 사울은 그 날의 그 사건을 잊지 못했을것 같습니다.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삼상 15: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삼상 15:26) 사무엘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삼상 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삼상 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삼상28:17
(삼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그런데 그 일이 사무엘상 24장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쫒던 그 다윗의 자신의 옷자락을 잘라 자신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옷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지요. 사울은 그 동굴앞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어내십니다. 사울의 교만함도 다윗의 겸손함도 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데 재료가 되어집니다. 늘 강조하지만 성경을 읽을때 사람의 어떠함에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높이고 사람을 욕하다 끝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십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소망이요 진리이십니다.
(삼상 24: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6.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요.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다윗은 사울을 이미 이긴 자였습니다. 사울이 아직 왕의 자리에 있고 더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있어도 다윗의 마음은 이미 사울을 이겼습니다. 사울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왕권을 물려줄것도 알았는데 고집을 부리며 악이 악을 불러 결국 죽게 됩니다. 사울도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감동을 받고 눈믈을 흘리며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구절절 맞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고집과 교만한 마음이 그를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삼상 24: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삼상26:17, 롬12:20
(삼상 24: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삼상 24: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삼상26:23
(삼상 24: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24: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삼상23:17, 삼상13:14
(삼상 24: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삼상20:15
(삼상 24:22) 다윗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어리석지만 우리의 모습이 때론 사울과 같습니다. 다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을 부립니다. 말씀에 다 나와있는데도 들을 귀가 없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다 해도 나의 억울함과 나의 감정이 먼저 입니다. 만약 다윗이 악을 악으로 갚으려했다면 사울 손에 벌써 죽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울을 선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을때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셨습니다. 우리가 할일은 원수와 싸우는게 아닙니다. 이미 싸움은 이겼습니다. 내가 선이신 하나님 쪽에 서면 이기는 것이고 악에게 서면 서는 순간 이미 진 것입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적이 나를 둘러싸고 힘들게 할때 능력이요 소망되신 주님께 나의 삶을 맡겨드리기 원합니다.
내 힘으로 안될때, 빈손으로 걸을때,
나의 적이 골리앗 처럼 거대하고 사울처럼 끝나지 않을것 같을때
그때가 바로 우리 주님이 일하실 때입니다. 아니, 이미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볼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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