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f 6/23

사랑하는 부모님들께

한주도 주님과 동행하시며 주님 주시는 힘으로 사셨습니까? 지난 주말 영락 부흥 성회에서 말씀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각자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때론 변하지 내 모습에 또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답답하고 화가 날때도 있지만 우리 모두들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분 보다 더 앞서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하실 그 예수를 바라보고 더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공지사항
1. 예배 시간에 늦게 오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년부 예배는 10시 50분에 시작합니다. 11시 20-30분에 오시면 거의 반을 놓치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년부는 10시 50분에 시작하고 맨 처음 시작에 그날애 배울 중요한 설교 영상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하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시간에 늦지 않게 아이들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님들도 예배에 늦지 않게 가시는 일입니다. 예배의 첫 시간을 기억하시고 시간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2. 이번 주일에는 점심식사가 없습니다. 예배가 끝난후 유년부실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주시길 바랍니다.
3. 3학년 이상 남자 아이들을 위한 농구 모임이 토요일 1시에서 3시에 문화센터에서 있습니다.
Family Discussion Starter
*People look at the outside of a person, but God looks at the heart.
Take turns naming three things about yourself that God can see and others can’t.
*Share about a time you were afraid. How can God help when you are afraid?
*How is Jesus a greater King than David?
더 깊은 묵상
1. 사울과 다윗
사람의 눈에 좋은 대로 뽑은 왕 사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왕이 있는것처럼 우리도 왕을 달라고 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다른 나라와 같은 키크고 잘생긴 왕을 그들에게 주십니다. 물론 외모가 좋다고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인물 값 한다는 소리는 있지만요. 인물이 안 좋다고 또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눈높이에서 (우리는 겉을 중요시 하고 속사람을 보는 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왕을 뽑아 주십니다. 지난 주에도 봤지만 사울은 처음과 다르게 점점 자신을 높이기 원했고 자신이 죄를 짓고도 하나님 무서운지 몰랐습니다. 처음 아담의 죄도 같습니다. 왕이신 하나님, 온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고 그것을 아담에게 위임하시고 아담을 왕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주시면서 확인을 받으신 것입니다. 니가 다스리지만 진짜 왕은 나인것을 잊지마. 그것이 바로 선악과 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왕은 진짜 왕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은 위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왕입니다. 자신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그분께 순종하는 왕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가 바로 선악과 명령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아담 뜻대로 할수 있지만 한 가지 선악과 앞에서 아담은 기억했을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주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지난 주까지는 제가 너무 사울의 불순종을 강조한것 같습니다. 사실 그래서 왕의 자리를 빼앗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보여지는 것일 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죄를 짓고도 하나님 무서운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영어로 보면 “I have sinned. But.. “입니다. 죄를 지은줄 알면 하나님앞에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령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저 사람들 앞에 자기를 높이라고 부탁합니다. 예배도 그러려고 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나서 참회하며 통회합니다. 시편 51편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구구절절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죄로 인에 하나님이 다윗을 떠날까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이 죄를 짓고 하나님이 영이 떠나는 것을 본사람입니다. 그런 후 사울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하며 괴로워하는지를 다윗은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저렇게 되는 것을 알았기에 죄를 짓고 난후 그는 “나를 주 앞에서 쫒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상한 심령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아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칫하면 하나님이 사울이 몇번 실수하고 불순종한 것으로 그를 버린 매정한 분으로 오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가롯 유다도 둘다 예수님을 배신 했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울과 같은 마음입니까? 아니면 다윗과 같은 마음입니까?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길로 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2.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까지
다윗의 스토리를 읽을때마다 이 대목에서는 먹먹해집니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뭔가 일이 술술 잘 풀리고 하나님이 다 도와주시고 그래야 할거 같은데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후 평범하고 조용한 그의 삶에 파도가 닥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후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미친 왕 사울을 섬기게 됩니다. 아마도 다윗은 사울을 가까이서 보면서 하나님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보고 간접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기름을 받은 후 다윗은 우연히 아빠 심부름을 갔다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블레셋의 골리앗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라 스킵합니다. 골리앗을 죽였으니 이제는 왕이 될 일만 남은거 같은데..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지질이 고생하며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며 그런 인생을 살아갑니다. 한 나라의 왕의 적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일입니까? 그런 모든 순간 순간 다윗은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울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합니다. 때론 다윗의 시편에서 적을 향해 저주하는 다윗도 보게 됩니다. 정말 다윗의 마음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때론 어떤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 마음이 이런데 감추는것은 이중인격이라고.. 겉다르고 속 다른 것이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이중인격자가 아니라고 은근히 자랑합니다. 속은 다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뜻이 아니기에 내 속을 죽이고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웃어주는 것이 바로 순종인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도 죽이고 사자와 이리도 죽이는 용감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속을 다 보이며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다윗에게 꼭 필요했기에 하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랬기에 시편에 엄청난 찬양과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나면, 우리의 인생이 술술 풀릴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요?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일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방법으로 그분은 우리를 인도해주시며 결곡 하나님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믿는 일입니다. 예수믿고 복받는것이 어떤 복인지 알고 믿으십시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앞에 나아가려고 할때 주변에서 어떠한 문제가 생긴다면 기억하십시요. 여러분이 그렇게 기도하셨기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숙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려고 힘든 상황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통해 성숙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3. 양치기보다 못한 다윗
우리에게 다윗은 너무나 훌륭한 왕이었지만 처음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장면을 보면 그의 아빠도 형제들의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새네 집에 갑니다. 이새가 누구입니까? 사무엘 상을 들어오기전 사사기와 사무엘상 사이에 있던 책 룻기 기억하시지요? 그 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마지막 족보이야기 입니다.
(룻 4: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 4: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헤스론을 낳고 마1:3
(룻 4:19) 헤스론을 낳았고 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룻 4: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살몬을 낳았고
(룻 4:21) 살몬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오벳을 낳았고
(룻 4:22) 오벳이새를 낳고 이새다윗을 낳았더라
이미 성경은 사사시대 이후 누가 주인공이 될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집에 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사울 이후 왕이 될 사람을 찾으러 이새네 집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새의 아들 7명을 다 봤는데도 하나님이 찾는 사람을 찾지 못합니다. 믿음의 사람 기도하는 사람 사무엘도 인간인지라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먼저 였습니다. 그래서 첫째 엘리압을 보았을때 “여호와의 기름부이실자가 과연 주님앞에 있도다” 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아무리 영적인 사람이라도 우리는 이 세상의 영향을 받고 살기 때문에 내츄럴하게 내 안에서 나오는 생각은 세상적일수 있습니다.
(삼상 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렇게 일곱을 다 사무엘 앞에 지나가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이 아들이 모두냐고 물어보자 이새는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한 사람 다윗을 떠올립니다. 아니.. 얼마나 안중에도 없는지 사무엘이 물어보니까 그제서야 대답을 합니다. 양치기 다윗. 그 많은 형들도 있지만 양치는 일은 다윗의 몫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때 (안 해봤기 때문에) 양치는 목동은 굉장히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환경일거라 생각하지만 우리의 상상과 달리 양치는 일은 매우 힘들고 목숨마저 잃을수 있는 극한 직업이랍니다. 형들을 대신해서 다윗이 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 다윗을 데려오게 시킵니다.
다윗은 첫인상은 그의 빛이 불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다 입니다. 얼굴이 왜 붉었을까요? 햇빛아래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눈이 뺴어나다는것은 총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다윗도 핸섬입니다. 그러면 우리중에 ‘뭐야 또 외모이야기네.’ 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외모 이야기 맞지만 그 외모가 그 사람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4.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정말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데 우리는 언제즘 하나님의 눈을 가지게 될련지요. 우리 주변에 다윗과 같은 사람을 찾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 중에 다윗과 같이 중심이 아름다운 사람을 찾게 됩니다. 앞에서 노래 잘하고 춤잘치고 봉사하기 때문에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람은 속일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수 없습니다. 저는 늘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모두의 눈에 띄는 사람이라 두려울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눈에 들지 못할까봐요. 그래서 리더를 위해 서로를 위해 중보해야 됨을 느낍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는 세상의 눈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모두가 알고 모두가 그럴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말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물론 우리 자신이 되고 싶겠지요. 하나님은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지요.”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리라.” 첫째 사람인 우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다시말해 나의 저 밑에 숨어있는 의도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 오면서도 얼마나 외모를 가꾸느라 야단입니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내 중심은 썩고 냄새가 나도 회칠한 무덤처럼 예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지고 나아오니.. 주여.. 용서하시옵소서. 그 외에 할 말이 없습니다.
때론 우리도 우리의 중심을 모를때가 있습니다. 알아도 무시하고 자기를 속일때가 있습니다.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했을때 그것을 한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하게 되었는지.. 내가 한 어떠한 행동보다 그 행동을 한 나의 저 깊은 곳의 의도와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사무엘 상하의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서 왜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는가를 더 보게 될 것입니다.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817)219-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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