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f 5/26

유년부 학부모님께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지난 주 이번 주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됩니다.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며 부모님들도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기대하며 또 걱정하는 줄 압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계심을 잊지 마십시요. 때론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 길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더 나은 일이 있음을 기대하십시요. 때론 내 뜻때로 되지 않음이 더 좋을때가 많습니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공지사항
1. 지난주에 유치부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의젓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일찍 보내주셔서 아이들이 예배를 준비하며 더 집중할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아이들을 10시 50분까지는 유년부실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여름방학 스케줄을 짜실때에 꼭 VBS(Vacation Bible School)를 넣어주세요. 아이들이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말씀을 배우며 찬양하며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아직 등록하지 못하신 분들 계시면 이번주일에 등록해주시길 바랍니다. 2부 예배후 문화센터 입구에서 VBS등록을 받고 있습니다. 날짜: 6월 4일~7일/ 6:00-8:30 pm/ $15 (CD와 티셔츠 포함)
3. 이번주 부터 3학년 이상 남자아이들을 위한 토요농구모임이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 1-3시 문화센터
4. 여름학교(Summer School) 등록을 받습니다.
(문화센터 로비/ 5월 30일 이전 등록시 조기등록 할인/ 대상: 1학년-8학년/ 기간: 6월 10일~28일(3주)& 7월 8일 ~26일(3주)
/ 시간 9:00am~3:00pm 문의: 서양지: 917-496-3739)
5. 여름학교 주방봉사자를 구합니다. (월~목 9:00am-1:00pm) 신청: 서양지: 917-496-3739
더 깊은 묵상
(교사들과 나누는 글을 부모님들께 보내드립니다. )
한 해의 중간이지만 교사인 저희들은 새로운 각오와 새 마음을 갖게 됩니다. 작심 삼일이지만,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지어먹은 마음은 삼일을 못가지만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우리는 연약하여도 주님이 완전하시니 지어먹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이 가능하게 해주실줄 믿습니다.
교사 몇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들이 알게모르게 힘드셨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죄송했습니다. 제가 무심하여서 선생님들을 더 세심히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은 사실은 작은 교회의 목회자이기에 어쩌면 힘든게 당연한거지도 모릅니다. 2019-2020 년에도 맡겨진 아이들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의 클래스가 될지 기대와 걱정도 되실거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쩌면 씨앗을 심는 것이고 물을 주는 것이겠지요. 그 열매는 지금 당장은 볼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줄 압니다.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오랜 시간, 비 바람과 햇빛을 맞아야 맛난 열매가 열려지겠지요. 우리는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1)사역자들이니라
(고전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반을 목회하면서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혼자는 힘들어도 둘이 셋이 힘을 합치면 그 짐이 가벼워 질것입니다. 축복합니다!!
1.성경은 생명을 주는 책
이번주는 룻기입니다. 지난주까지 사사기를 배웠지요. 룻이나 보아스는 사사는 아닙니다. 룻기는 사사기 어느 시대에 일어난 이야기 입니다. 한마디로 사사시대에 살았던 한 가정의 일을 드라마처럼 보여줍니다. 말씀을 큰 그림으로 보지 못할때는 룻기하면 시어머니한테 잘 하라는 책인줄 알았습니다. 왜 그런 내용이 성경이라는 곳에 나올까? 하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로 보지 못하면 성경은 단순한 도덕책이나 교훈이 가득한 훌륭한 책일 수는 있어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아무리 읽고 묵상해도 그곳에서 교훈이나 도덕적인 것만 얻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기에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2. 하나님의 열심
암울하고 깜깜했던 사사시대에 룻기는 소망이 되는 책입니다. 룻기에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룻기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가 읽기 싫어하는 족보입니다.
(룻 4: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헤스론을 낳고 마1:3
(룻 4:19) 헤스론을 낳았고 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룻 4: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살몬을 낳았고
(룻 4:21) 살몬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오벳을 낳았고
(룻 4:22) 오벳이새를 낳고 이새다윗을 낳았더라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온민족이 복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그들의 자손들을 통하여 계속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성취해 주시는 것입니다.
(룻 4: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룻이라는 한 이방여인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베레스를 낳아 계보를 이어갔던 것처럼 룻도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여인이 된 것입니다. 참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느헤미야 에스라 시대에는 포로귀환한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면서 이방여인과 결혼한 남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내를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금지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룻의 이야기나 보아스의 엄마였던 기생 라합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계획, 그분의 열심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절대 우리의 도덕적인 잣대로 옳다 그르다를 말할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세상이 따르는 그 잣대로는 다 판단할수 없습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쫒아가겠다고 하면서 고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 고백을 들으면 마치 룻이 대단히 믿음이 좋은 여인처럼 보여집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당시 문화적으로 본다면 한국처럼 여자는 시집을 가면 그 집에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문화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신의 개념은 지역신이었기 때문에 그 땅으로 시집을 가면 그 땅의 신을 섬기는 것이 그들의 신 개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하나님은 믿기가 참 어렵지 않았을까요? 남편도 죽게 하고 자식도 죽게하는 그런 신이라면 무서워서 어디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룻의 입장에서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시집온 여자의 입장에서 한 말일 것입니다. (룻의 믿음을 최소화하는 것은 제 생각입니다. 어떤 분들은 룻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나오미를 따라갔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고백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룻은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는줄 알았을까요? 열국의 어머니가 된 사라처럼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어머니의 하나님이 정말 룻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정말 룻의 백성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3. 우연이 아닙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삶을 속단하지 마십시요. 나오미 가정의 일을 보면서 참 절망입니다. 잘 살아 보겠다고 이민을 갔는데 신랑도 아들도 잃고 며느리 한명하고 고향 땅을 밟은 나오미의 인생을 생각해보십시요. 정말 쓰디쓴 아픔입니다. 그런데 결론을 알고 있는 우리가 이 책을 읽을때는 단순히 절망만은 아닙니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고.. 모든것을 잃고 다시 고향땅 베들레헴을 밟은 일은 누가봐도 실패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생에는 결코 실패와 절망이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가 거하지 않는가 이지 그리스도안에만 있으면 우리는 늘 축복인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들,
룻과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 땅을 밟으며 이러한 일이 있을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룻 1: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룻 2: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 4: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살다보니 흉년이 들고 살다보니 이민을 가고 살다보니 역이민을 오고 유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된것같고 마침 그 사람을 만난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일하고 계셨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
보아스가 이방여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방여인인 저에게 대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 이방 여인인 저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정말 주를 향한 저의 고백입니다.
(룻 2: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룻 2: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룻 2: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 2: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룻 2: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2)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 2:15) 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룻 2:16)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 3: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룻 3: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가 이방여인을 위해 기업을 무를자가 되어 자신의 재산을 들여 그 땅을 사고 나오미와 룻을 책임지는 모습은 아무 유익없이 자신을 주신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룻의 가정에게 구원자를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값없이 우리의 구원을 사셨습니다. 그 값은 예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줄은 알았지만 보아스와 룻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구체적이고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일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을 참 좋아합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일하시는 우리 하나님. 보아스가 그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룻 3: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룻 3: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헤세드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닌 자비 긍휼 은혜를 입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나오미를 불쌍히 여기며 따라왔던 룻은 보아스에게 더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돌보시며 그의 날개 아래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 쓰고 금요 기도회에 갔었는데 금요기도회의 말씀이 누가복음 6장 3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나오미를 헤아렸던 룻은 보아스에게 더 큰 헤아림을 받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주고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것을 주님은 아시고 우리도 그런 은혜를 또 누군가에게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그 누구보다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시며 받아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얼마나 헤아리십니까? 얼마나 그들을 공감하며 불쌍히 여기며 함께 동행하시나요? 룻은 친구 동료 동행자 라는 이름의 뜻을 가졌습니다. 그냥 불쌍하다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행해주는 룻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시지 않았을까요?
룻기는 내용은 여러분이 읽어보십시요. 사실 커버할 내용이 많지만 생략합니다. 소그룹이 없기때문에 이메일을 쉴까 하다가 부족하지만 말씀 묵상한 것을 함께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새옹지마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중국에서 유래되는 한자 성어입니다.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노인이 기르던 이 어느 날에 도망가자 사람들은 “말이 도망가서 어쩌나…” 하고 위로 했지만 이 노인은 “글쎄요, 이 일이 복이 될 지 어찌 알겠소.”라며 낙심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도망갔던 말이 많은 야생마들을 이끌고 노인에게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제 부자가 되셨구려.”라고 축하했지만 이 노인은 “글쎄, 이 일이 재앙이 될 지도 모를 일이 아니오.”라며 기뻐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노인의 아들이 그 말들 가운데에서 좋은 말 하나를 골라 타고 다니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치고 장애를 얻어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아들이 다쳐서 저 지경이 되었으니 어쩌나…” 하고 걱정하며 위로했지만 노인은 “허허, 이 일이 복이 될 지도 모를 일 아니겠소.”라며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얼마 뒤,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많은 남자들이 전쟁터로 끌려가서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어떤 남자들은 행방불명되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못쓰게 되었기에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노인이 왜 그리 모든 일에 덤덤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원나라승려 ‘회회기’라는 사람이 시를 지은 데서 ‘새옹지마’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화와 복은 알 수 없으니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이곤 한다.

우리의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승리입니다. 룻과 나오미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는 사건은 이 땅에서 누구도 겪고 싶지 않은 최대의 비극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것 역시 우리의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인생도 다른 사람의 인생도 늘 일희일비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좋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능하시기 까지 합니다. 우리의 한계로 우리의 삶을 섣불리 판단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정말 기묘자 모사 이십니다.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돌아갑시다. 결코 늦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갑시다. 나오미가 모든 수치와 절망속에서도 베들레헴으로 돌아간 것처럼요. 근심을 찬송으로 바꾸실 주님, 우리의 한숨을 기도로 찬양으로 바꾸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고전 2:9) 기록된 바 ㄱ)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817)219-4773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