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부모님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번주부터 완연한 봄이 온것 같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시길 소망합니다.
공지사항
1. 지난 주 담임 목사님께서도 광고 때 말씀하셨지만 예배 시간을 잘 맞춰서 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유년부 아이들은 10시 50분에 예배가 시작하는데 만약 아이들이 늦게 들어온다면 중요한 첫 시간을 놓치게 됩니다.
2. 4월 둘째주는 종려주일 연합예배로 드립니다. 이때 유년부 아이들이 연합 찬양팀의 콰이어로 예배를 섬기게 됩니다. 연습은 4월 7일 주일 오후학교 시간에 본당에서 찬양팀과 함께 연습을 할것입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아이들을 격려해주셔서 모두가 콰이어로 설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그날 의상은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입니다.
3. 5학년 제자 양육이 진행중입니다. 토요일 오후 6시-8시 유년부실에서 있습니다. (저녁식사 제공)
4. 오후학교가 계속 진행중입니다. 1:10-2:30 부모님들께서 드랍, 픽업을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더 깊은 묵상
지난 주 까지는 광야생활의 내용을 배웠습니다. 마지막 불뱀 사건 이후 이스라엘은 이제 정신을 좀 차린것 같습니다. 불뱀 사건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단 동쪽 아모리 땅과 바산왕 옥의 땅을 점령하며 승리를 경험합니다. 앞으로 진짜 가나안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불뱀은 꼭 있어야 했던 하나님의 훈련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번 주도 아무래도 긴 글이 될것 같습니다. 그래도 읽어주세요. 🙂
1. 모압 왕 발락의 두려움
십볼의 아들 발락은 모압의 왕이었습니다.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모압 나라는 지난 번에 나온 에돔 위에 있고 가나안(약속의 땅, 지금의 이스라엘), 요단강 동쪽에 있는 땅입니다. 모압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들입니다. 저들이 여호와의 섭리를 제대로 깨닫고 있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진입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여호와의 신앙에서 멀었기 때문에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었고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기에 이런 두려움에 사로 잡힙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일을 오히려 그르치고 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동안 아모리 족속을 비롯 이방족속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여 모압땅까지 오게 되었는데, 60만 대군에다가 200만명이 넘는 인구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나라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 (신 2:9)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
지난 주 에돔의 역사처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도 하나님이 생각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고 싸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발락이 가만히 있었어도 이스라엘은 저들을 공격하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런데 모압왕은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결국 축복대신 저주를 받게 됩니다.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바로 두려움이 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우리를 묶고 괴롭힙니다. 그리고 일을 그르치게 만듭니다.
| (민 22:2) |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
| (민 22:3) |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
| (민 22:4) |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제 에디오피아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단의 왕국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믿는자들의 무릎, 즉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진이한테 말씀을 쉐어했더니 진이가 왜 사단의 왕국은 하나님이 무서운줄 알면서도 믿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발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일을 보아서 두려웠다면 항복하고 오면 될것을 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잘 알지 못하기에 돌아오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며 일을 더 나쁘게 몰아갑니다. 우리는 안 그럴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능력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립니다. 그것을 성경은 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발락 왕의 두려움으로 한 일은 점쟁이 발람을 불러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미래가 두려워 점쟁이를 찾아간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점쟁이 말은 믿고 하나님의 약속은 믿지 못하고. 정말 우리는 보이는 것이 다인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눈이 열어져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를 소원합니다.
2. 발람은 누구인가?
민수기에 보면 발람의 이야기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성경을 읽다보면 발람이란 이름이 종종 등장합니다.
| (벧후 2:15) |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 (벧후 2:16) |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
| (계 2:14) |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을 얼핏 읽어보면 하나님의 선지자 처럼 느껴집니다. 여호와라고 부르고 나의 하나님이라고까지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내용은 완전히 몹쓸놈으로 나오네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발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모압 왕 발락에 의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할 목적으로 고용된 사람이었습니다.
| (민 22:5) |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1)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신23:4 |
| (민 22:6) |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
브돌은 유브라데스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그곳에는 잡다한 우상숭배자들과 복술자들이 자연히 모여들게 되었으며, 발람은 당시 그들 중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인지 모압으로부터 약 650km 떨어진 브돌까지 모압왕 발락이 수차례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돈에 눈이 멀어 남을 저주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3. 발람과 하나님과의 3번 대면
1) 첫번째 대면
모압에서 사람들이 왔을때 발람은 밤에 신을 찾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만나주시며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나 모압 귀족들에게 말을 할때는 다 말하지 않고 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고만 말하고 이유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왜 가지 말라고 하십니까? 발람은 가서 저주를 하려고 하는건데 이스라엘은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해 주지 않고 살짝 여지를 남깁니다.
| (민 22:12) |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
| (민 22:13) |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2) 두번째 대면
발람이 모압에서 온 사람들과 가기를 거절하니 다시 모압의 왕 발락은 더 높은 고관들을 보냅니다. 돈이 부족해서 안 오나 싶어서 발락왕은 돈을 더 보낸것입니다.
| (민 22:18) |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
| (민 22:19) |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
| (민 22:20) |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
발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발람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하나님은 답을 알려줬는데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더 하실지 알아본다고 합니다. 이해가 가나요? 우리도 그럴때가 너무 많지요. 하나님의 뜻은 알지만 또 요청을 합니다. 우리도 사실 하나님의 답을 몰라서 안 지키는게 아니라 다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내 뜻을 꺾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고 작정기도를 하는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처음에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발람이 또 이야기할때 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발람이 가고 싶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이미 아셨기에 그의 자유의지에 맡기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발람이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것인지 발람이 똑똑히 보도록 알려주실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못이기는 것처럼 하나님은 허락하시지만 결과는 발람이 겪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집부리고 가면 결국은 나에게 손해이며 고생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찍 순종하는 길이 축복의 길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조종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자하는 발람처럼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고집하는 기도는 아닌지 말입니다.
3) 세번째 대면 (발람과 나귀)
하나님 뜻은 밝혔지만 발람이 가기로 결정하자 하나님은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꼼꼼히 읽어보세요 왜 하필 나귀까지 나오게 되었는지요.
| (민 22:21) |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
| (민 22:22) |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
| (민 22:23)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
| (민 22:24) |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
| (민 22:25)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
| (민 22:26) |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호2:6 |
| (민 22:27)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
| (민 22:28) |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눅19:40 |
| (민 22:29) |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전9:3, 렘17:9 |
| (민 22:30) |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고전1:27 |
| (민 22:31) |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
| (민 22:32) |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
| (민 22:33) |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
| (민 22:34) |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
| (민 22:35) |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
하나님과 발람도 세번 대면을 하고 나귀와 발람도 세번 대면을 합니다. 발람은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는 나귀를 처음에는 채찍질 , 두번째도 채찍질, 세번째는 지팡이로 때리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결국 칼이 있었으면 내가 나귀 너를 죽였으리라. 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지금 발람을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발람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같이 발람과 나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발람은 유명한 술사이고 나귀는 하찮은 동물이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나귀도 보는 여호와의 사자를 발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를 저주하려고 가는 데 나귀 한마리도 제어 하지 못합니다. 최고의 술사가 이 정도의 실력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귀는 고집세고 미련한 짐승으로 유명한데 나귀보다도 고집이 세고 미련한 발람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누구랑도 말씀하실수 있습니다. 나귀와도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발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에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헷갈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방의 왕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가 아니라 들은 그 말씀을 순종하느냐 입니다. 매 주일 예배를 드릴때에 우리는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문제는 그래서 “So what ?” 입니다. 은혜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 받은 말씀을 순종했느냐가 중요한것입니다.
4.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 없습니다.
이제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발락을 만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갑니다. 왜 그렇게 까지 합니까? 돈때문이지요. 세상은 돈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하는 결정을 잘 보면 돈이 하나님일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발람의 길, 즉 불의의 삯을 따라간 그 길로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 (마 6:22) |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5)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
| (마 6:23) |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
| (마 6:24)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는데 하나는 하나님이고 하나는 돈입니다.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줄 아시겠지요? 아까 영적인 것을 보게 해 달라고 말했는데 신기하게도 마태복음에 두 주인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의 눈은 지금 성합니까? 혹시 돈이 우리의 눈을 가린건 아닙니까? 발람처럼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며 살고 있습니까?
5. 무대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발람과 발락이 이 이 모든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평안히 누워자고 있을때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지질이 불순종하는 자식들이지만) 당신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아무리 말을 안 듣는 자식들이지만 누군가 우리 자식을 해하려 할때 가만히 보고만 있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발락과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십니다. 예언은 시처럼 표현이 되어서 해석이 좀 어려울수 있습니다. 예언이 너무 길어서 다 쓰지는 않겠습니다. 발람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축복이 됩니다. 그중에서 두번째 예언 중에 있었던 이야기만 언급하겠습니다.
| (민 23:21) |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
| (민 23:22) |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신33:17 |
| (민 23:23) |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
놀랍지 않습니까? 지질이도 말 안듣는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고 사사건건 반역하는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않으신답니다. 왜 복을 주십니까?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그 사건 때문입니다.
| (창 12: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 (창 12:3)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그래서 성경은 구약 신약 약속의 책입니다. 발람이 예언 하는 중에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 (민 23:19) |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약속을 이미 다 받은 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든든한 축복인줄 아십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인줄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모든 일을 알수 없없지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일들을 어떻게 볼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보이지 않는 저 무대 뒤 편에서 너무나 열심히 너무나 치밀하게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합시다.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축복의 말씀은 몇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할때에 우리의 말에도 권세가 있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하고 사십니까?
6. 말의 파워
발람의 말이 뭐 그렇게 중요하길래 하나님은 그토록 발람의 입을 막으시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야 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말이라는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만약 발람이 저주를 하고 그 소식을 이스라엘이 들었다면 이스라엘은 그 말을 믿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싸움도 하기 전에 포기했었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말은 파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우리의 말에도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을 비롯한 성경에는 우리의 말에 대한 주의와 경고가 많이 나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말은 어떠한 힘이 있습니까? 죽고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고 합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뿌린 씨앗들이 없어지는게 아닙니다. 그냥 말한건데 뭐..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그 말은 누군가의 밭에 떨어져서 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내 마음밭에 또는 내 자식, 내 배우자, 내 학생들에게 떨어져서 지금 자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말의 씨를 뿌렸습니까? 우리 마음속에서는 어떠한 말들이 자라고 있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그렇기에 성경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왜요? 그만큼 말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음은 말의 무게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너도 나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말에도 진실되게 대하십니다.
말을 무시하지 마십시요. 말은 우리의 생각을 묶고 그렇게 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 실체입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거나 누군가에게 비난을 당한 적이 있으시지요? 그 말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합니다. 좋은 말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나쁜 말들은 특별히 좋지 않은 상황에 몰릴때면 우리가 들었던 비난의 소리가 맞는것 같다고 여기며 그 말을 붙잡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조금 더 알아가는 것이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리라 믿습니다. 세상은 흔들리고 사람들은 다 주를 떠나도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베푸신 삶의 자리가 최고의것임을 믿으십시요. 말씀을 떠나면 바로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 (사 40:7) |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사40:24 |
| (사 40:8)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817)219-47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