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아이들과 봄방학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도 아이와 함께 봄방학을 보내느라 학부모편지가 늦어졌습니다.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주일에 만나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무엇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신앙생활도 한 번 잘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몸을 씻고 손을 씻고 살아가는 것처럼 매일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나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앞에 가는 것이기에 매일 깨어있어야함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 루틴이 깨지면서 마음도 해이해지고 말씀 앞에 나가는 시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 마음을 정비하고 기도와 말씀속에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신앙생활은 어제 잘했다고 안심할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모든 부모님들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공지사항
1. 5학년 제자양육이 매주 토요일 6시 유년부실에서 있습니다. 저녁식사가 제공되고 8시에 끝납니다. 성경책, 노트, 펜을 준비해주세요.
2. 3학년 이상 남자 아이들 농구가 토요일 1시부터 3시에 문화센터에서 있습니다.
3. 유년부 예배는 10시 50분에 시작합니다. 늦지 않게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말씀나눔 (민수기 20-21장)
1. 구제 불능 인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다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30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삶은 같습니다. 은혜를 입고도 잘 까먹고 스스로 잘나서 된줄로 착각하고 화장실 들어갈때랑 나올때 마음이 다르고.. 인간을 표현하는 단어중 제가 자주 쓰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구제 불능과 배은 망덕입니다.
지난 주 민수기 14장을 배웠지요. 가데스바네아 에서 정탐꾼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광야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약속의 땅이 코 앞에 놓였는데 말입니다. 그들도 정탐꾼 사건이 그렇게 큰 죄가 될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했을뿐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악하게 보셨습니다. 믿음없는 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지 못하고 자꾸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죄 입니다. 세상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고 똑똑하다고 칭찬할수 있지만 하나님은 악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죄가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 우리의 생각, 우리의 동기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될때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20장도 다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작합니다. 민수기 14장 사건이후 40년 정도가 지난 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앞에 죄를 짓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도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어야만 했을까요? 도저히 인간들의 노력과 의지에는 소망을 거실수가 없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여지껏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여기 까지 오게 된 건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요.
| (민 20:2) |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민16:42 |
| (민 20:3) |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
| (민 20:4) |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
| (민 20:5) |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
그놈의 불평!!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습관인 것 같습니다. 조금만 자기뜻대로 안되고 불편한 일이 생기면 우리도 하는 것이 바로 원망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늘 원망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늘 감사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것이 없습니다. 입술을 훈련합시다. 하나님은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냥 하나님께 구하면 주실텐데. 우리는 저렇게 악한 말로 하나님께 할말 못할말을 다 해버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할때 화내시지 않습니다.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배고플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고 고기를 달라고 할때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감사함으로 구합시다. 불평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그냥 감사함으로 구합시다. 그것이 습관이 되기를 훈련합시다!!
| (빌 4:6)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 (마 6:32)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 가나안으로 가려고 하는 길에 에돔을 통과해서 가면 편안하게 갈수있는 왕의 대로가 있는데 에돔이 거절하였습니다. 사정하고 사정했지만 형제 나라인 에돔은 이스라엘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에돔을 우회해서 힘든 길을 가야했습니다.
| (민 21:4) |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
| (민 21:5) |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
호르산에서 아론의 장례를 치르고 길을 떠나는데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고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도 민수기 20장 므리바에서의 사건으로 가나안땅에 못 들어간다는 엄청난 일을 겪었고 이제 정말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아론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데도 정신을 못차리고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 끝장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요. 여러분,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해서 그것을 참지 못하고 계속 가 보십시요. 그 끝이 어디인지요? 내가 하고 싶은말 다 해보십시요. 성질 내고 싶은 대로 다 내 보십시요. 그 결말은 죽음이고 지옥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하는 일이 무슨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너무 함부로 살아갑니다. 악하게 뿌린 씨는 악한 열매를 거둘것입니다.
광야에서 음식이 없을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신선한 만나를 매일 내려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꿀처러 달다고 말하더니 이제 40년 동안 먹고 나니 기적의 만나는 하찮은 음식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익숙해지면 하찮은게 됩니다. 처음엔 그것 없으면 못살거 같았는데 매일 있으니 하찮은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반석에서 나오는 물도 더이상 놀라움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아야하겠지요.
2. 불뱀을 보내시다
뱀은 광야에서 흔하게 발견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지껏 한번도 뱀때문에 힘들었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여지껏 보호하신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만나를 주시며 불뱀을 만나지 않도록 섬세하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망하자 하나님의 보호막이 약해지고 뱀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너무 스포일되었지요. 하루에도 사건사고가 몇천건씩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죽을일 쌓여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어려움을 안 당할 이유가 있기는 한 것입니까?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신 것입니다. 매일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그 빠른 속도로 운전을 하면서도 오늘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1초에 5명의 아이들의 배고픔에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배불러 죽지요. 당연한 것입니까?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적이 기적이 아니고 감사가 감사가 아닌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요.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고 계시다고요. 소중한 것을 잃어봐야 소중한 것을 아는 것처럼 불뱀을 보내 백성을 물게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중에 죽은자가 많게 되니 이제서야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민 21:6) |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
| (민 21:7) |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불평 좀 했다고 죽이기까지야..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불평 조금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3. 단순한 불평이 아닌 평소 하나님을 향한 동기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언제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고 화를 냅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을때 화를 내는 것입니다. 민수기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보면 여러가지 스토리가 등장하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내가 왕이냐 하나님이 왕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창세기 3장 선악과 이야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단 한가지 선악과 명령을 주시며 “너는 내가 만들었어. 너는 나에게 붙어있을때 가장 행복하단다. 기억하렴 너는 내가 만들었단다.”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선악과는 하나님이 왕이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창조주이시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멋지게 지음받았기에 언제든지 하나님을 버리면 자신들이 왕의 자리에 오를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고 이성이 있어 판단하고 나름 선과 악도 판단할줄 압니다. 정확히 사단이 하와를 꼬신내용처럼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지 않고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고 선과악을 알게 되는 존재가 되는 것 처럼 속였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이제 하나님 자리에 우리가 앉아버렸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판단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되니까요. 지금 왕의 대로로 빨리 가나안에 가는 것이 우리의 뜻인데 그 뜻이 안 이루어지고 에돔을 우회해서 오래걸리고 힘든 길을 가게 되니 화가 나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왕이니까요.
교회일을 하면서도 우리가 왜 화가 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뜻이 진리가 되어 그것대로 되지 않으니까 당당히 화를 내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요.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우리가 왕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하고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무엇을 하기 전에 생각할 것이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다른 말로 우리 마음의 동기입니다. 누구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불평 몇마디에 죽인게 아니라 참 하나님을 믿지 못함이 문제였습니다. 깨달았다면 지금 기회가 있을때 더이상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말고 지금 회개합시다.
4. 가나안에 가는 이유, 삶의 목적
하나님이 왜 구원하셨는지를 모르면 성경의 내용이 해석이 안됩니다. 지금 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땅에 보내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성경해석이 안됩니다. 그러면 “불평 조금 했다고 죽이기 까지 하고 난리야” 로 해석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앞으로 오고 올 인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시려고 합니다.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과 결혼의 목적이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보는 관점은 정반대일것입니다. 같은 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한쪽은 행복을 다른 한쪽은 불행을 말할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창조주시이시라면, 정말 그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의 인생을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내가 생각하는 편한길로는 되지 않는 다는 것은 기본으로 알 것입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인으로 살아가려면 애굽에서 가졌던 가치관과 사고를 버리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빠졌던 우리의 습관과 생각과 태도가 죽지 않고서는 하나님 닮아갈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것과 맞추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늘 괴롭고 힘든 인생을 살게될 것입니다.
5. 광야에서의 삶
| (신 8:2)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 (신 8:3) |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 (신 8:4) |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
| (신 8:5) |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
| (신 8:6) |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꼭 광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이 없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여정을 갈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도 무엇을 이루려 하면 엄청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고행 자체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훈련은 하나님만을 믿게 하는 훈련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왕이심을 인정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길을 걷는 우리를 낮추시며 시험하십니다. 왜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보시려고요. 그리고 우리를 낮추시고 주리게 하셨습니다. 왜요? 만나를 주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나이요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왜요? 아비가 아들을 징계하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자녀인 우리들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징계가 필요하겠지요?
| (히 12:1)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1:2-38 |
| (히 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 (히 12:3)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마24:9 |
| (히 12:4)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
| (히 12:5)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ㄱ)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잠 3:11, 12 |
| (히 12:6)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
| (히 12:7) |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벧전5:9 |
| (히 12:8)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 (히 12:9) |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
| (히 12:10) |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
| (히 12:11)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우리는 불뱀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징계하는 그 불뱀을 통해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게 되며 하나님이 우리르 사랑하시므로 징계하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6. 불뱀과 놋뱀, 쳐다본즉 모두 살리라
재미있는 것은 불뱀으로 죽게되었는데 그 불벰처럼 생긴 놋뱀을 보면 산다는것입니다. 뱀 말고 더 좋은 이미지를 사용하실수도 있었을텐데 하나님은 뱀때문에 죽게생긴 그들에게 죄와 심판의 도구인 뱀을 구원의 도구를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이 사건을 요한복음 3장에서 인용하시며 죄와 심판의 도구가 바로 십자가였으면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죽일 때 쓰는 로마시대의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은혜의 도구가 됩니다.
| (고전 1: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불뱀을 보면서 자신들이 지은 죄를 떠올렸을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 스스로 판단하고 불평했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를 물어 죽게만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을 쳐다보면 살게 되었습니다. 참 웃긴 명령입니다. 전혀 매치가 안됩니다. 뱀에 물려 죽게되었으면 약을 바르던지, 물로 닦든지.. 뭐 좀 이성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 뱀을 다시 쳐다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비교해보면 너무나 말이 됩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것에 합당한 벌을 받거나 값을 지불하라고 하면 좋을텐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뱀에 물린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처방전을 따르지 않고 놋뱀을 보쳐다보지 않은 자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저주의 십자가에서 모두 죽이셨으니 그것을 믿고 너는 다시 태어나는 거다 말씀해주시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십자가이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십자가 나무 자체가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놋뱀에도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죽어야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놋뱀을 히스기야 왕때까지 우상으로 섬겼다고 성경을 기록합니다. 마치 우리가 십자가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처럼요.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병주고 약주시나?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병은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 이미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하지 마십시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에게 살 길을 내어주신 분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커피를 참 사랑합니다. 그런데 커피때문에 위장병을 달고 살았는데도 그것을 끊지 못했습니다. 이번주에 사역자들끼리 모여 말씀을 나누는데 DC목사님이 향이 좋은 커피를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마시기를 권했습니다. 저는 이제 커피 끊었다고 이야기했더니 한잔 마시고 놋뱀을 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고쳐주신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지껏 너무 많이 그러고 살았습니다. 커피마시고 놋뱀보고..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놋뱀은 어쩌면 뱀에 물린 그날 하루만 작동하는 사건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릅니다. 죄를 짓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제가 DC 목사님께는 더이상 커피마시고 놋뱀 보는 일은 하지 않고 싶다고 말했지만 저는 저를 믿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심판하시려 함이 아니요 구원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 (요 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 (요 3:17)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5)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또는 정죄 |
| (요 3:18) | 그를 믿는 자는 5)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5)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하나님의 처방전은 단순히 쳐다보면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로 인해 힘든 영혼이여 믿으면 살리라.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말씀하시는데 너무 쉬워서 못 믿습니다. 사실 너무 쉽다고 생각되서 내 이성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믿지 못함이 죄입니다.
| (요 16:9)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우리도 오늘 광야에서 살아갑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이시기에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믿으면 살리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내 생각대로가면 망하는 길입니다. 이미 우리는 선악과 이후에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내 이성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도 감정이 끌리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사는 것입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사는데 왜 안 쳐다봐서 죽었냐 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어리석다고 욕하지 마십시요. 어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럴는지 모릅니다.
구제불능 배은망덕한 인간들을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의 깊이와 넒이와 높이를 더 알고 싶습니다. 나도 나를 벌써 포기했는데 주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살길을 보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겸손히 그분앞에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817)219-47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