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f 2/11

사랑하는 부모님들께

어디에 계시든지 주님이 주신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성막 설교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성막의 기구들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 또 얼마나 어려우신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가장 어렵고 두려운 존재가 누구입니까? 지난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 쉽게 본 거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크심과 거룩하심에 놀라지 않을수 없습니다. 거룩하시고 철두철미하신 그분이 진짜 은혜가 많으셔서 우리를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니 우리가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벌써 2월도 중순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릅니다. 5학년 친구들은 이제 몇달 안되어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등부에 가게 될 것입니다. 5학년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에 유년부에서는 5학년 아이들을 위한 12주 제자 양육을 합니다. 올해는 요한복음을 함께 보면서 아이들이 그동안 배운 것들을 돌아보고 믿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배우길 원합니다. 3월 2일 토요일 6시에 시작합니다. 시간은 저녁 6시~8시입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제자양육을 합니다. 준비물은 성경책과 노트입니다.
공지사항
1. 3학년 이상 남자 아이들을 위한 농구모임이 토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있습니다.
2. 유년부 예배시간은 10시 50분입니다. 늦지 않도록 아이들을 보내주세요.
3. 오후학교는 1시 10분에 시작하고 2시 30분에 끝납니다. 픽업과 드랍시간을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더 깊은 묵상
1. 번제단의 재료
(출 27: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다시 조각목이 등장합니다. 번제단의 크기는 성막 안에 기구 중 가장 큰 것입니다. 가로 세로가 다섯규빗 씩이면 2.5미터 정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높이는 1.5m 정도 입니다.
(출 27: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그리고 네 모퉁이에 뿔(horn)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제단을 놋(bronze)으로 쌉니다. 그래서 놋제단이라고도 부릅니다. 금이 아니라 놋입니다. 성소 안은 모든 것이 금으로 되어있지만 성소 밖에 번제단과 물두멍은 다 놋으로 되어있습니다.
조각목은 예수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낸다고 이미 배웠지요. 금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놋은 어떨까요?
놋이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창세기 4장입니다. 가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두발가인은 인류문명의 조상이 됩니다. 그는 놋과 쇠로 여러가지 무기와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놋은 인본주의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창 4:22) 씰라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또한 놋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계시록에서는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을 나타날때 발이 빛난 주석( fine bronze)과 같다고 묘사합니다.
(계 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이사야에서는 죄를 상징합니다.
(사 48:4)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또한 신명기에서는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다고 이야기하시며 불순종할때 너희의 하늘은 놋이 되어 닫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놋은 금과 확연히 다릅니다. 놋은 우리의 죄에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할때
(신 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 놋뱀에 대하여
놋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 민수기에 나오는 놋뱀이 생각납니다. 아시지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여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십니다. 광야는 원래 불뱀이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여지껏 하나님의 보호로 불뱀이 없이 살았습니다. 은혜로 살고 있는데 그것을 모릅니다. 불뱀이 나타나봐야 우리는 여지껏 은혜로 산 것을 알게 됩니다. ㅠㅠ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시니 이제 범죄한 것을 알고 모세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하나님은 놋뱀을 만들어 나무에 장대에 매 달라고 처방을 내리십니다. 누구든지 그 놋뱀을 쳐다본즉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민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놋뱀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불순종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여줍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와 같습니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는 저주를 상징합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신 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아래에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ㅂ)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러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말을 아십니까? 율법은 좋은 건데 왜 저주라고 표현할까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율법을 따라 우리가 판단을 받는다면 율법은 우리에게 저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의를 가지고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롬 3:10) 기록된 바 ㄴ)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율법을 따라서 심판이 있다면 우리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3)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런데 우리는 그 저주를 우리가 받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가시켰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참 뻔뻔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벌은 예수가 받게 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밖에 죄를 해결하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저주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징계하실때도 그 안에는 살려주시겠다는 사랑과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3. 번제단, 속죄의 자리
놋을 공부하다 멀리까지 왔습니다. 그 이유는 번제단은 바로 우리의 죄를 해결받기 위한 속죄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번제단은 성막에 들어와서 가장 처음 만나는 기구입니다. 번제는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의 종류입니다. 번제가 죄와 관련이 없을때는 완전한 헌신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번제를 드릴때는 제물 전부를 태워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번제의 일반적인 규정은 이렇습니다. (출29:38-46, 레위기 1:6, 8-13, 민수기 15:1-16) 먼저 예배자가 성막 문 앞으로 희생동물을 가져와 자신의 손을 그 머리위에 얹습니다. (레1:4) 이는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으로 예배자의 죄가 동물에게 전이된 것을 상징합니다. 그후 예배자는 희생동물을 번제단 북쪽으로 가져가 잡았으며 (레1:11),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잡을 때에는 번제단 위에서 목을 비틀어 잡았습니다. (레1:15) 번제에 있어서는 오직 새들만이 제사장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나머지는 예배자가 직접 죽였습니다. 여러분이 소나 양을 잡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집에서 성막까지 동물을 정성스레 가져오는 일도 큰 일이지만 성막에 와서 그 동물을 죽이는 일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이것을 실험해 본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물은 한번에 잡아지지 않는답니다. 살아있는 소를 어떻게 쉽게 잡을수 있을까요? 피가 튀기고 칼로 찌르고.. 레위기에 보면 흠없는 것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흠없는 것을 드리려면 자신이 어릴적부터 집에서 흠없게 키운 동물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키운 동물에게 못된 짓을 하고 난 후에야 동물을 죽일수 있게 됩니다. 먼저 내 죄를 죄없는 동물에게 전가하고 그것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파내고 각을 뜨는 것입니다. 각을 뜬다는 것은 칼로 자른다는 것이겠지요. 대단한 작업입니다. 아니 정말 잔인하고 괴기스러운 일입니다. 이 일은 제사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 용서를 받아야 할 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자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올때 어떤 마음으로 오십니까? 내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생각은 있나요? 교회오면 사람만나고 밥하고 밥먹고 이야기하고 예배보고(?) 혹시 이러지는 않습니까?
피가 제단위에 뿌려지는 것은 필수적이었는데 피는 제사장에 의해 번제단 사면에 뿌려졌습니다.(레 1:5,15) 그리고 예배자가 희생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 지체를 자르고 물로 그것들을 씻은후 동물은 모두 제사장에게 옮겨졌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것을 취해 제단위에 놓고 완전하게 태웠습니다.
이것이 번제단에서 행해지는 일이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일 없이는 어느 누구도 성소에 들어갈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들 중에 이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아직 성소에 갈 준비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양을 잡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모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예배자는 자신의 죄를 몽땅 뒤집어 씌운 동물을 죽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도 흠없이 내가 키운 동물을 죽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은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아니면 예수님이 단번에 용서해주셨다고 하니까 마음껏 죄를 짓고 살아갑니까?
4. 번제단의 뿔
이 뿔의 용도 중에 하나는, 제물로 드려진 짐승을, 번제단에 매어두기 위하여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뿔은, 소나 염소나, 양들을 매어 두기에 충분하도록, 견고해야만 했습니다. 제물을 매어두는 뿔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의 뿔’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2).

또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뿔’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눅 1:69~71).

이처럼 뿔은 구원의 능력,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고(고전1:18),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롬1:16).

성경에서 뿔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열왕기상 1장을 보면 아도니야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는 자기가 왕위 계승자인 줄 착각해 오만 방자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하자 두려운 나머지 성전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꽉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만을 붙들고 솔로몬에게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런 아도니야를 선대하여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왕상1:50~53).

이처럼 제단 뿔을 잡은 사람을 살려주는 제도는 하나님께서 우발적인 살인죄를 범한 사람들이 성막에 들어가 번제단 뿔을 잡으면 살게 해주신 데서 유래합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출21:12~15).

원래는 성막 제단이 도피처였는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는 레위인 성읍 여섯을 정하고 ‘도피성’이라 불렀습니다(민35:5~15;신4:41~49;수20:1~9). 이것은 오늘날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회개하여 속죄받은 자는 누구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신 자는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모습은 바로 이 뿔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살려주세요, 예수님만이 저의 구원이십니다”. 하고 그 뿔을 붙들고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는 소 천마리를 죽여도 죄를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그 죄의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십니다.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민28:3
(히 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1)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5. 불을 항상 지켜야 함
(레 6:12)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레 6: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이 불은 인간이 만들어낸 불이 아닙니다.
(레 9: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번제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레 9:23) 모세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레 9: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창15:17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로 불이 내려왔다는 이야기 이후 바로 그 다음 구절이 아론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불이 아닌 다른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한 나답과 아비후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예배를 드릴때 우리는 아무렇게나 드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하는데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찬양을 할때도 기도를 할때도 오직 여호와앞에서 그의 방법으로 해야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좋다고, 말이 된다고, 다수가 찬성한다고 어떤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불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레 10:1) 아론의 아들 나답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출30:9
(레 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그리고 우리가 받은 그 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피워야 합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 처음 온 날이 아니라 진짜 예수안에서 거듭난 것을 의미합니다. ) 받았던 그 죄사함의 경험, 즉 구원의 기쁨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 불로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수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불을 계속 피우기 위해서입니다. 이 불로 분향단의 불도 붙이는 것입니다. 이 죄사함의 불이 없이는 하나님앞에 간구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한번 회개했으면 끝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불이 계속 안꺼지고 탈수 있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단번에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줬다고 하니까 아무 생각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죄를 짓고도 죄로 인해 아픈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51: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69:35, 사51:3
(시 51: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반대로 마음은 없이 재물에 눈이 멀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울이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전쟁후 양과 소를 죽이지 않고 끌고 옵니다. 하나님이 양고기 소고기를 원하십니까? 어떻게 하나님 마음을 이리도 모를까요?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저는 부모가 되어서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자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저의 관계를 보게 되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제 아버지이시고 저도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이기에 작게 나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수 있게 됩니다. 저는 부모로서 진이한테 가장 감동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는데 진이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줄때입니다. 한마디로 제 마음을 알아줄때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참 잘 았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양 잡고 소 잡고 흠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니까 하나님을 아주 이상한 괴짜 신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죄의 무서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찐 양고기 소고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죄가 해결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죄는 사랑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올때에 우리의 상한 심령을 원하십니다. 죄로 인해 안타까워하고 지긋지긋해 하며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음을 처절하게 아는 사람만이 예수를 온전히 바라보게 되고 그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며 그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분이십니다. 더이상 하나님을 오해하지 맙시다.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시118:6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구원의 뿔을 붙잡고 오늘도 담대히 성소에 들어가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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