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f 2/3/19

사랑하는 부모님들께

여러분들은 오늘 무엇을 짓고 사셨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말씀하시고 하나 하나 어떻게 지어야 할지도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매 주일 교회를 향한 말씀이 선포되면 우리도 선포된 말씀처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막을 짓는 것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나와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그렇게 말씀대로 지어나가면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운데 들어갈수 있습니다. 말씀은 있는데 내 삶과 아무 연결이 없다면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지를요. 매일 주시는 말씀을 따라 믿음의 집을 잘 짓기를 소망합니다.
(출 25: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공지사항
1. 유년부 예배시간은 10시 50분입니다.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또한 예배에 올때에는 꼭 성경책을 가져오세요.
2. 토요일 3학년 이상 남자아이들을 위한 농구모임이 있습니다. (1pm-3pm)
더 깊은 나눔
오늘은 등잔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 (출애굽기 25장 31절~40절)
1. 등잔대의 재료와 모양

(출 25:31)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등잔대는 다른기구들과 다르게 오직 순금으로만 만들어집니다. 기억나시지요? 언약궤나 떡상이나 분향단은 모두 아카시아 나무에 정금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등잔대는 오직 순금으로만 만들어집니다. 순금은 우리의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신성과 그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또 재밌는 것은 다른 것들은 주조해서 만들었다면 등잔대는 금 한 덩이를 자르거나 나눈 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금 덩이를 쳐서 등잔대 모양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영어로는 hammer 라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두들겨 맞아야 등잔대가 완성이 되어질까요? ㅠㅠ
등잔대의 구조는 밑판, 줄기, 잔과 꽃받침 그리고 꽃으로 만들어집니다. 아래의 말씀을 잘 읽어보세요.
(출 25:32)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민8:4, 출37:18
(출 25:33)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출 25:34)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출 25:35)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출 25: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그림을 보면 이해가 더 쉬울것 같습니다.
금 한 덩이를 쳐서 저런 모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단한 작업니다.
금 한 달란트로 만들라고 했는데 얼마정도가 될까요? 대략 30킬로그램 정도 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가격으로 환산하면 1킬로그램 금 덩이가 43000불 정도한다고 하네요. 그러면 30배를 하면 129만 달러네요. 맞나요? 성막 밖의 모습은 초라할지 모르지만 성소안으로 들어오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 뿐 아니라 성소의 벽도 다 금으로 둘러쌓여있으니 그 값은 정말 상상 이상이겠네요.
등잔대는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이사야에 보면 메사야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그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등잔대도 줄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에서 한 줄기 그리고 양쪾에서 세개씩 가지가 열려 총 7개의 가지가 생깁니다. 이사야서 11장 2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영을 말하며 그것은 곧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을 나타냅니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왜 하필 살구꽃일까요? 성경에는 살구꽃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서도 살구꽃이 피었습니다.
(민 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그리고 예레미야가 처음 하나님께로 사명을 받을때에도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을 봅니다.
(렘 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렘 1: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1)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살구꼿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원래는 살구꽃이 아니라 아몬드입니다. 성경을 번역할때 우리 나라에는 아몬드나무가 없으니까 비슷한 살구꽃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몬드 나무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추운 겨울이 끝나갈 무렵 이 아몬드나무에서 꽃이 피면 사람들은 봄이 올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봄을 깨우는 꽃입니다. 원어로도 아몬드 꽃은 샤카드라는 말로 “흔들어 깨운다”, “ 감시한다”, ” 파숫꾼이 지킨다” 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실때에도 내 말을 지켜.. 라는 말은 지켜 본다(watching)는 뜻입니다. 또한 모든 것이 죽어있는 것과 같은 겨울에 피어오르는 아몬드 꽃은 죽음가운데 부활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2. 등잔대를 만드는 법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등잔대를 만들때는 한덩어리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연결하여” 라는 말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롬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인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지난 주에 분향단에 대해 공부할때도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하신 기도 아시지요?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의 기도, 즉 예수님의 뜻은 우리가 주님안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하나된 우리가 또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들겨 맞고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도가 연합하게 될련지요. 혹시 우리 중에 고난중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맞는 길임에 확실합니다. 이렇게 두들겨 맞아 모양을 갖춰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니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입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안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우리는 무엇을 자꾸 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안에 거하면 즉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예수(그분의 말씀)께서 사시는 것이라. “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3. 성소안에 단 하나의 빛
성막은 4개의 천막으로 싸여있고 그 안에는 창문이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빛이 들어올 만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등잔대의 불만이 성소를 밝혀주는 유일한 빛입니다. 이 빛이 성소에 없다면 그 값진 금도 볼수가 없습니다. 성소에 빛이 없다면 떡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소에 빛이 없다면 분향단의 불도 피울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때에도 가장 먼저 만든 것이 빛이 였습니다. 빛이 있어야 다른 것들의 가치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들어가도 깜깜하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불을 켜는 일일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일을 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 빛이 켜져야 다른 모든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럼 그 빛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제는 하도 많이 해서 알겠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이시니라.
말씀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주의 말씀이 등이요 빛이라고요.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등잔대가 어디를 비추고 있을까요? 민수기에 보면 등잔대 앞을 비추게 합니다. 등잔대 앞에는 무엇이 마주보고 있습니까? 바로 떡상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인데 이 빛이 바로 떡상을 비추고 있으니 이 빛은 성령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민 8: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8:2)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 하시매 출40:25
(민 8:3)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민 8:4) 이 등잔대의 제작법은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양식을 따라 이 등잔대를 만들었더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어둠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어둠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는 빛을 읽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다른 빛을 진짜 빛인줄 알고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성소안에는 오직 이 등잔대의 빛만 존재할뿐 외부의 빛은 없습니다. 내가 빛을 잃었는지 알아보려면 내가 지금 어둠에 다니는지 빛가운데 생활하는지 보십시요. 꼭 성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빛과 어둠의 역할을 잘 압니다.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을때 나쁜 짓을 할수 있을까요? 그런데 불이 꺼지고 아무도 나를 볼수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나쁜 짓을 저지를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저만 그런가요? 세상도 다 아는 컨셉이지만 우리는 지금 참 빛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참 빛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3)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논쟁을 들어보세요. 정말 예수님이 멋지십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요5:31
(요 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요13:3, 요16:28, 요9:29
(요 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요 8: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 8:17) 너희 ㄴ)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신17:6
(요 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요 8: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14:7, 요16:3
(요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이 빛이셨고 그 빛이 사람들 중에 있었는데 왜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이었는데 슬프게도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종교행위를 했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고 그래서 그의 아들 예수도 알수 없었습니다. 이 빛은 물질적인 빛이 아니라 영적인 빛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이 당신을 빛이라고 소개하신 후 9장에 가보니 날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날때부터 맹인된 이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묻지요. 누구의 죄로 인해 맹인으로 태어났는지요. 그 사건입니다.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요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이 고침받은 맹인과 대화하는 것과 바리새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읽어보세요.
(요 9: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2)인자를 믿느냐
(요 9: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요 9: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요 9: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요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롬2:19
(요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좀 멀리오긴 했는데요. 왜 바리새인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옆에 두고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까? 를 생각하다가 이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하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자신들이 맞다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은 스스로 본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름의 빛이 있다고 자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몰랐다고 한다면 죄가 없을텐데 못 보면서도 본다고 하니 그것이 죄인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정말 무서운 교훈이 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은 종교활동을 하는게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붙어있어서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은 2000년 전에만 존재했던 무리가 아닙니다. 지금 오늘 교회에 다니는 우리를 향한 메세지임을 잊지마십시요.
결국 빛이신 예수님을 못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죄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왕이 되어 살아온 삶 때문입니다.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2)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2)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5:38
4. 우리도 세상의 빛, 오직 성령으로
성막에서 계속 하는 이야기는 같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시면 우리도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떡이시면 우리도 떡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런데 어떻게 그 빛이 될수 있을까요? 힘을 내고 능력을 다해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스가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슥 4: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왕상19:5, 렘31:26, 단8:18
(슥 4: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슥 4:3)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슥 4: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슥 4: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슥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스가랴서를 찾아봤더니 등잔대의 환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스갸랴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BC 586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70년간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바벨론은 페르시아 제국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의 첫 왕인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포토록 합니다. 그리웠던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수축해도 좋다는 엄청난 허락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약 5만명의 유대인들이 스가랴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나 에스라서 4:23절에 보면 이들이 성전을 2년 동안 건축하다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내적인 분란으로 14년간이나 중단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의 환상이 보여집니다. 스가랴 4장 처음에 보면 스가랴가 본 8개 환상중에 5번째 환상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슥4:1)

그는 성전건축을 하다가 지쳤습니다. 지금 14년 동안 포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스가랴 선지자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성령은 이렇게 우리를 깨워주십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은 순금 등대와 7등잔 그리고 두 감람나무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학자들은 순금등대는 예수님이고 7등잔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또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요한도 이와 비슷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1:20)

스가랴의 환상은 무너진 성전, 짓다가 포기한 성전 짓는 것을 계속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고 성전 짓다가 포기한 것을 어떻게 다시 시작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같은 이야기 입니다. 우리도 스가랴도 지금 성전 짓는 이야기입니다.

스가랴서 4장 6절에 답이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하니까 하늘로 부터 불이 떨어져서 능력을 받는 줄로 생각하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는 이미 성령이 하시는 일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성령은 우리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요. 성령의 불을 받아 정신 나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러분, 성막의 겉모습은 그냥 천막을 쳐 놓은 집같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정말 대단히 멋진 곳이었습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러 가는 그 길은 정말 영광의 길입니다. 회개하며 기도할때는 우리 삶이 찌질해보이지만 그 과정을 거쳐 주님을 만나러 가는 그곳은 황홀한 곳입니다. 황폐한 사막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던 그 광야와 모든 곳이 금으로 덮여있는 그 영광의 장소에서 등잔대의 불이 7개 타오르는 그 모습을 비교해보십시요. 우리 주님 믿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 영광을 본 자는 세상의 그 멋진 것을 보고도 마음을 뺏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정말 어떻게 성소안에 그 영광을 볼수 있습니까? 바로 성령이 밝히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에 보면 우리의 착한 행실이 곧 우리의 빛을 사람들에게 비치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 착한 행실은 결코 종교적인 활동을 말하지 않습니다. 능도 아닌 힘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40일을 머물고 산에서 내려왔을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우리의 빛은 우리 스스로의 착한 행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앞에 오래 머문 시간 만큼 그 주님의 빛이 남에게 비춰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피부에서 광채가 납니까? 요즘 여자들이 사용하는 물광화장품이 아니고요..:)
(출 34: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출 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엡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1)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롬1:24-27
(엡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등잔대는 우리를 깨어주시는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잠자는 우리를 깨어주셔서 우리를 비추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더러움을 알고 어두움에서 돌이켜 빛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5. 등잔불 정리
(출 27: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출 27: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1)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레 2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 2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레 24:3) 아론은 회막안 속죄소 위 곧 1)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레 24:4) 그는 여호와 앞에서 2)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이 등잔불도 제사장이 아침 저녁으로 들어가서 항상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불집게는 등잔의 타 버린 심지를 자르거나 등대에 불을 붙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제사장은 등대의 불이 타오르는 동안에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혹은 조금이라도 더 밝게 비취도록 하기 위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감람유가 닳아서 심지가 타 들어가지 않도록 계속 감람유를 공급하고, 심지의 모양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불집게를 손에 쥐고 심지를 손질하거나 낡은 불똥을 거두어 내는 일을 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지가 타서 길어지면 그을음이 나고 빛도 밝지 못하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자꾸 길어지면 잘라내주어야 합니다. 성령이 아미 내주하셔서 충만하시는데 왜 나는 성령의 역사가 없을까 고민하시는 분 계십니까? 정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집 마당도 잔디로 충만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보면 잡초가 그 잔디 중간에 자라나서 잡초밭이 되어져 버립니다. 정리하고 잘라내면 다시 예쁜 잔디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안의 쓴 뿌리와 욕심과 불평과 불신의 잡초를 정리합시다. 아침 저녁으로 그을음을 정리하면 우와.. 항상 타오르는 불이 되어져서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빛이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어둠 속에 사는 세상이 빛을 보고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주안에서
조이전도사드림
(817)219-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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